『거꾸로 달리는 미국』을 영상으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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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의 물질적 풍요는 본질적으로 세계적 차원에서의 물질적 착취와 불평등한 분배,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군사적 무력으로 성취되는 것이므로 이 경쟁은 미국적 모순을 끊임없이 세계적 차원에서 재생산하며 소수의 작은 유사-미국(Pseudo-America)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미국이라는 제국과 미국의 세계체제는 이런 작은 유사-미국들의 존재를 이용해 모순을 완화시키고 예정된 몰락을 지연시키고 있다.”
(『거꾸로 달리는 미국』머리말 중에서)
자동차들의 나라 미국. 차가 많은 만큼 미국엔 ‘길’도 아주 많습니다. 지금은 크라이슬러나 제네럴 모터스, 포드 같은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몰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각축을 벌이는 가장 큰 시장 중에 하나입니다. 그만큼 모터스포츠도 굉장히 발달을 했구요. 차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온갖 물품들은 미국으로 모입니다. 그것들은 미국에서 소비되기도 하고, 다른 나라들로 팔려 나가기도 하죠.
상품들만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온갖 뉴스, 정치담론, 최신 사상들, 세계의 온갖 ‘말’들이 미국으로 모입니다.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 이야기 하고, 미국에서 이야기하고, 미국을 향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모으는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를 생산하는 큰 회사들이(MS, 애플, 델컴퓨터 등등) 있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군대는 미국을 통해 움직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예외도 간혹 있지만, 서방 세계의 여러 군대, 아시아 각국의 군대는 사실상 미군과의 관련없이 생각하기 힘들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중문화 역시 마찬가지죠. 미국 음악, 미국 영화, 미국 음식, 미국 소설 등 미국인이 즐기는 온갖 문화상품들이 세계로 퍼지고, 자기 나라에서 성공한 문화상품들이 미국 시장을 뚫고 들어오려고 노력합니다.
온갖 사물과 기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 그런 점에서 미국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바로 ‘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을 향한, 미국으로부터의 모임과 흩어짐이 빈번하게 일어날수록 세계엔 유사-미국(Pseudo-America)이 늘어납니다. 한국도 이론의 여지없이 그 중의 하나이구요. 이렇게 보면 미국은 세계 전체에 투영된 존재이고, 지금 우리가 세계정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히 거쳐가야 할 관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부득이 미국을 이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죠. 한때 미국 진보의 성지로 불린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홈리스의 도시로 변한 것처럼, 한때 빈번하게 집회가 열렸던 서울역과 종묘에서 노숙자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미국의 풍경이 몇시간 후의 한국의 풍경이 될 수 있고, 내일의 한국의 풍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품들만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온갖 뉴스, 정치담론, 최신 사상들, 세계의 온갖 ‘말’들이 미국으로 모입니다.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 이야기 하고, 미국에서 이야기하고, 미국을 향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모으는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를 생산하는 큰 회사들이(MS, 애플, 델컴퓨터 등등) 있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군대는 미국을 통해 움직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예외도 간혹 있지만, 서방 세계의 여러 군대, 아시아 각국의 군대는 사실상 미군과의 관련없이 생각하기 힘들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중문화 역시 마찬가지죠. 미국 음악, 미국 영화, 미국 음식, 미국 소설 등 미국인이 즐기는 온갖 문화상품들이 세계로 퍼지고, 자기 나라에서 성공한 문화상품들이 미국 시장을 뚫고 들어오려고 노력합니다.
온갖 사물과 기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 그런 점에서 미국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바로 ‘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을 향한, 미국으로부터의 모임과 흩어짐이 빈번하게 일어날수록 세계엔 유사-미국(Pseudo-America)이 늘어납니다. 한국도 이론의 여지없이 그 중의 하나이구요. 이렇게 보면 미국은 세계 전체에 투영된 존재이고, 지금 우리가 세계정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히 거쳐가야 할 관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부득이 미국을 이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죠. 한때 미국 진보의 성지로 불린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홈리스의 도시로 변한 것처럼, 한때 빈번하게 집회가 열렸던 서울역과 종묘에서 노숙자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미국의 풍경이 몇시간 후의 한국의 풍경이 될 수 있고, 내일의 한국의 풍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가 바로 그 미국을 극복해야 한다면 미국이 아닌 세계의 내부, 우리의 내부에 각인되어 있는 미국을 극복해야 가능하다.”
(『거꾸로 달리는 미국』머리말 중에서)
따라서 ‘반미가 상식’이 된 시대(물론 우리는 몰상식한 사람들을 자주 보긴 합니다)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태평양 건너에 있는 실물로서의 ‘미국’이라기보다는 미국을 향해 난 ‘길’,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서 미국적 소비, 미국적 생활을 원하는 자본주의적인 우리 자신의 욕망들일 것입니다. 이게 극복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미국적 평준화를 넘어선 ‘새로운 것’을 우리 삶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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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수식하는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자유의 나라’, ‘기회의 땅’, ‘식량 대국’, ‘부자들의 나라’, ‘패스트푸드의 고향’과 같은 말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미국엔 그런 각각의 수식어들에 어울리는 아이콘들이 있죠. 미국이 ‘자유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를 상징한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아이콘들은 미국의 풍요와 부를 상징하죠. 그래서 가끔 현실의 미국인이 어떻게 사는지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부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미국의 부를 상징하는 ‘아이콘’들이 내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광채, 헐리웃 영화의 스크린을 수놓는 그 아이콘들의 빛들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포장된 미국이 빛나는 만큼 미국은 짙은 그림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미국이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자유’를 관철시키려고 할 때, 그 빛의 이면엔 전쟁과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그림자를 이루고 있죠. 또, 맥도날드가 만들어내는 패스트푸드는 음식값이 싸고, 굶는 사람이 드문 미국의 풍요를 드러내는 동시에 하층민의 식습관을 정크푸드로 균질화하는 대자본의 짙은 그림자를 드러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그 사회를 상징하는 아이콘들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만큼 그 상징에 묻혀버리는 구체적인 현실의 단면들이 있게 마련이니까 말입니다.
『거꾸로 달리는 미국』은 미국을 가로지는 길을 따라 흐르는 미국사회의 미시적인 세포들까지 포착합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미국의 아이콘과 그 아이콘이 현실에서 어떤 효과들을 만들어 내는지, 그 안에 사는 미국인들은 어떤 정서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하는 점들이 생생하게 살아나오죠.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꽉 채운 노숙자들로부터 미국의 빈부격차를 읽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모습에서 미국 진보운동의 후퇴를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독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상징과 상징의 현실적 차원을 읽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습니다. 유사-미국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착상을 『거꾸로 달리는 미국』을 통해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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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물입니다. ‘미국’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 중에 하나죠.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전쟁을 벌였을 때, 영국과 미묘한 관계에 있었던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을 지원합니다.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이기고, 완전한 독립을 얻었을 때 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상>을 축하선물로 미국에 보냅니다.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는 키워드는 미국에게 ‘이민자들의 천국’이라는 이미지를 선물하죠. 뉴욕항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은 지금도 이민자들이 건너오는 바다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이민자들에게 축복을 내릴지 어떤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거꾸로 달리는 미국』 동영상 3편
미국은 제목 그대로 ‘공포’로 유지되는 사회입니다. 못 가진 사람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고, 가진 사람은 누군가 자기 재산과 가족을 노리지 않나 걱정해야 하죠. ‘능력본위’의 사회가 그나마 잘 구현된 사회가 있다면 아마 미국이 그런 사회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사회이기도 하구요. 타고난 조건, 살아갈 환경, 다닐 학교, 사귀게 될 친구 등등. 이 모든 것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능력껏 살아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삶의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불어 매스컴은 끊임없이 공포를 심어줍니다. 어디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났다. 외국인들이 미국을 노리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만들고 있다와 같은 말들이 그렇죠. 이 공포가 미국인들을 더욱 미국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저런 공포의 메커니즘이 결코 미국인들의 주체화 양식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조건의 차이를 무시하고 능력대로 살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가난한 외국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행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기존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는 기제로 활용하는 것이나, 동일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죠. 아마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공포를 느끼고, 그에 따라 자기의식을 재구성하는 의식의 메커니즘은 동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뒤틀린 영혼 중에 가장 가련한 영혼은 공포에 뒤틀린 영혼이다. 공포란 것은 밑도 없고 끝도 없어 종국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게 인간을 광인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인간을 광인으로 만들고 또 그 광인들을 흔들어 줄지어 세운 후 뒷덜미를 잡고 전쟁도로 끌고 가는 것이다.”
(본문 291쪽)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다른 게 없습니다. 그 사회가 돌아가는 메커니즘, 대중의 공포를 통해 이득을 챙기는 자들은 누구며, 어떤 방식으로 공포가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죠. 그렇게 할 때만, 갑작스럽게 뒷덜미를 잡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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