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내겐 비밀이있어.
진짜 비밀 얘기야. 이걸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어.
나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게 뭔데?
그 순간 나는 내 비밀을 말로 표현할 방도가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눈이나 기묘한 한숨에 대한 이야기조치 할 수 없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드디어 그 애가 날 바라보고 있는데, 전혀 할 말이 없다니.
난 공간을 통해 시간을 끌어서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날 따라오렴
그런 다음 나는 단호한 태도 속에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을 숨긴 채 발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기적이었다 그 애가 나를 따라왔던 것이다. 사실 그 애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이 특별한 행차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애는 외인 지구 안을 처천히 거닐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 그 애는 나와 더불어, 내 옆이긴 하지만 언제나처럼 거리를 둔 채 하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느릿하게 걷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불편은 그 애에게 보여 줄 것이 전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겁에 질려있는 내 마음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로 그 애를 데려간단 말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걸었다.
땅에 뚫려 있는 구멍이나 부서진 벽돌, 혹은 말도 안되는 것을 그 애에게 보여 주면서, 오, 누군가가 훔쳐 가버렸어! 도대체 누가 에메랄드로 가득 찬 내 상자를 가져간 거지? 하고 터무니없는 허풍을 떨어야 하는 그 수치스러운 순간을 늦추기 위해. 아름다운 엘레나는 나를 비웃으리라. 내 명예를 건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지만,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웃음거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비밀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에메랄드 상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엘레나에게 그 지고한 비밀 -눈과 기묘한 열기와 미지의 희열과 신비로운 미소,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더욱 설명하기 어려운 일련의 장면들-을 설명할 말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만약 그 애로 하여금 그 경이로운 장면을 엿보게 할 수 있었다면, 그 애는 그런 나에게 찬탄에 이어 사랑을 느낄 것임이 분명했다. 언어로 인해 나는 그애와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맞는 주문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마치 알리바바가 열려라참깨하고 외쳤던 것처럼! 하지만 그 커다란 비밀은 내게 자신의 주문을 알려 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엘레나의 관심을 돌려놓을 핵 발전소나 범선, 코끼리 같은 것이 기적적으로 나타나 주기를 막연하게 걸음을 늦추고 또 늦출수밖에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절망과 분노가 나를 휩쌌다. 나는 땅바닥에 몸을 굴리며 이렇게 외칠 터였다.
그 비밀은 어디에도 없어! 그걸 보여 줄 방법이 없고, 어떻게 그 얘기를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어! 하지만 그건 분명히 있어! 넌 그걸 믿어야해.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천 배 더 멋지니까! 그리고 넌 나를 사랑해야 해. 왜냐하면 마음속에 그런 걸 갖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나처럼 특별한 존재를 놓쳐선 안 되잖아!
...
...
내 생에 가장 고귀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 시절은 언제까지나 내 안에 남아있으리란 것.
-
이론을 믿어야하는 것으로 여길만큼 순진한 사람들이 요즘도 있을까?
이론이란 속물들을 자극하고 탐미주의자들을 매혹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
《프랑스 스와르》誌(이하 FS) : 열여덟 번째 소설 『겨울 여행』은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어떻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로부터 놀랍다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멜리 노통브 (이하 AB) : 내 자신을 놀라게 하기 위해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신성한 스포츠와도 같다. 나의 한계를 넘는 최첨단의 상태를 늘 유지해야 하니까. 나는 매순간 글을 쓰고 있다.
FS : 자신의 문학을 정의한다면?
AB :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해보이지만, 꼭 답을 해야 한다면, 나의 문학은 격한 감정의 문학이라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직관에 의존해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문학이란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더욱 깊이 파고드는 데에 기여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오감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감각은 너무나 순간적이어서 충분히 분석하고 질문을 던질 만한 여유를 남기지 않는다. 엄청난 비극이 아닌가. 보고 듣는 행위는 단순해보이지만 놀랍도록 특별한 것이다. 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권』을 읽는 우리의 몸과 영혼은 샴페인에 흠뻑 취했다. 올해 발표한 신작에서는 환각버섯에 취하게 되는데…… 그러한 무아지경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AB : 나는 모든 최면상태에 흥미를 느낀다. 뭔가에 취할 때,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취한 상태에서만이 정말로 맑은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라면서, 즉 성인이 되어 가면서 책임감과 이성을 갖춘 한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어떤 필터를 만들어 간다. 문제는 이 필터가 사물의 광기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끔씩 어떤 방법으로든 뭔가에 취하게 되면 성인이라는 인식을 떨쳐버릴 수 있다. (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합법적이고도 간단한 방법들이다.) 우리 안에는 늘 어린 아이가 존재하고 있다. 순수하게 감탄을 하는 마음도.
FS : 『겨울 여행』의 첫 페이지를 보면, 주인공이 13시 30분 발 비행기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있다. 최근 일어난 항공기 사고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주제를 다룬다는 것이 망설여지지는 않았나?
AB : 내가 이 소설을 쓴 것은 2008년 11월, 리오-파리 간 항공기 사고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 사고를 접하고 무척 가슴이 아팠다. 물론 일종의 비행기 공포를 가중시키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를 자주 탔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늘 두렵다.
FS : 주인공 조일은 한 여인을 광적으로 사랑하다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여 무시무시한 테러를 계획하기에 이르는데……
AB : 사랑은 정말 위험한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지만 가장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겨울 여행』에서는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를 했다. 광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을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독하리만치 극단적인 감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형편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FS : 『겨울 여행』에서 작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가?
AB : 그렇다. 비정상 소설가(소설 속 알리에노르)이다. 누구든 나와 함께 며칠만 살아보면, 내가 완전한 지적 장애자임을 알 수 있다.
FS : 이번 작품의 결말은 ‘파괴’인가.
AB : ‘파괴’라기보다는 우리네 인생의 결말처럼 ‘혼돈’으로 끝을 맺는다고 하겠다. 나는 결말 부분을 열어두었다. 카오스, 혼돈 상태로 말이다. 문학의 목표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나 신처럼 시작과 끝을 모르는 것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터 회, 경계에 선 아이들 (0) | 2010.12.21 |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0) | 2010.12.17 |
어느 날 누구에게든 아무 말이나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 『호밀밭의 파수꾼』 (0) | 2010.12.11 |
Kahlil Gibran, 일곱 자아 (0) | 2010.11.29 |
김연수, 길 위에서 (0) | 2010.11.28 |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 (0) | 2010.10.16 |
임영태,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0) | 2010.10.13 |
이젠 위로할 수조차 없어요. (0) | 2010.10.09 |
어떤 숲 (1) | 2010.10.08 |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0) | 2010.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