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네미 샤틀레라는 이름은 가짜다. 이 세상에 존재했었으나, 이제는 없는, 내가 사랑했던 여인을 나는 그렇게 부를 것이다. 그녀의 생각이 그녀의 삶이라 한다면, 그녀의 생각을 말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과거를 향해 절망적으로 손을 내밀 때 과거로부터 나온 것은 새로운 시간과 맞바꾸어질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서 생겨나는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를 감동시킨 것에서 비롯된, 우리를 부추기는 예전의 삶 전체가 마음속에 떨어져내린 한 움큼의 먼지도 한 덩어리의 진흙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우리의 몸 깊은 곳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살아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년 전, 아니 10여 년 전에 내가 사랑했던 그 여자는 이제는 이 세상에 -다른 어떤 세상에도- 살고 있지 않지만, 그녀의 몸인 어떤 것이 아직도 내 몸 안에서 혈액처럼 순환하고 있다. 살아 있는 (내가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순간, 나는 살아있으므로) 이 흔적은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이 육체 안에 거주하고 있다. 아직도 메아리처럼 육체에서 분리되는 영혼 이상으로, 온전히 그리고 영구히 내 육체에 거주하는 애인의 육체는 그 형태가 나의 지배권에 들어오는 최초의 순간부터, 내 육체 안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자기 자리를 되찾았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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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네미 사틀레의 가르침에 힘을 부여했던 것은, 내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모차르트 로흘리츠에게 했던 속내 이야기 안에 감춰져 있었다. 즉 모든 것이 한 덩어리로, 단 한 번에, 접히지 않고, 거의 전체적으로, 요컨대 '동시적인-리듬'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작곡가의 두뇌와 육체를 엄청나게 지치게 하는데, 그는 바로 그때 악보를 기록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는 작곡가가 아니라 단순히 고통을 당했을 뿐이다.
환영의 습격을 받는 것, 여행을 하는 것만이 예술의 본질은 아니다. 되돌아와서 악보를 기록하는 작은 용기가 추가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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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고 벌려진 채 있는 내면의 색청(色聽)으로부터 악보를 적어내는 일은 작은 용기, 뒤로 한 발 물러서기, 가늘게 눈을 뜨고 보아야 하는 용기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절머리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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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로홀리츠에게 했던 매우 단순한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명확하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 전체를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파노라마를 구성하는 것이 문제다. 양팔로, 단 한번에 전체를 통째로 끌어안아야 한다.
'전체를 한꺼번에' 단번에 기록해야 한다.
전체를 앞지르는 것은 동일한 시간 내에서 그것을 애도함이다.
그것을 영원한 결별 안에서 붙잡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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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배우는 것은 태어나는 것에 속한다.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 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
피가 뇌 속으로, 눈 뒤쪽으로, 손가락 끝으로, 몸통 윗부분으로, 아랫배로, 어디로나 갑자기 훨씬 더 잘 순환하게 된다.
우주가 확대된다. 즉 문이 없던 곳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문 자체와 함께 육체가 열린다.
예전의 육체가 다른 육체로 변한다. 우리가 전속력으로 전진하는 것에 미지의 나라가 펼쳐지며 심지어 확대되는 것 속에서 우리 자신도 확대된다. 알고 있었던 일체의 것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면서 새로운 빛을 띠게 된다. 우리가 떠났던 일체의 것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입체감을 띠고서, 갑자기 새로운 땅으로 들어온다.
이 변모는 옛날이야기마다 나오는 각각의 주인공들을 위해 묘사되었고, 바로 그것이 사나흘 저녁마다 이런 짧은 신화를 읽는 내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비친다. 동화 그 자체 안에서처럼 동화의 독서를 통해서도 힘들은 해방된다. 요정이나 짐승들이 속삭인 몇 마디 단어들은 의미를 가진 강력한 동작이나 시선들이 된다.
몽둥이. 활. 부싯돌. 석궁. 배. 말[馬]과 같은 단어들은 아주 새로운 포획 기능 자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진짜로 사냥감을 만들어내는 손 같은 것이 된다.
새로운 무기들은 새로운 사냥감을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술책들을 낳게 되고, 새로운 사냥꾼들을 생겨나게 한다.
아무에게도 관련되지 않은 도전들이 갑자기 우연에 의해 추구하지 않았던 결과에 속하게 된다. 그게 배운다는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고, 장벽이 무너졌으므로 간격이 사라진다. 그게 배운다는 것이다. 숲이 어둠에서 벗어난다. 여행의 노정이 연장된다.
배울 때 기쁨을 느끼지 않는 자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일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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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미의 특이성은 모든 사람들 눈에 띄었다. 그녀의 말없이 강렬한 주의력은 아름다움에 닿아 있다. 가차없는 작고 검은 눈, 말할 때의 느린 어조가 그녀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식당 종업원들까지도 주눅들게 하였다. 목소리의 부드러움과 느린 말투는 침묵을 필요로 하였다. 말하자면 스위스식인 그녀의 어조 그리고 그녀가 기술한다고 주장하는 주제이거나 그녀가 도달하려는 판단을 구성하는 문장들을 끝까지 전개시키려는 욕구는 짜증이 나게 만든다.
그러한 것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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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는 또 하나의 다른 세계였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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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그녀를 비사교적으로 만들고 불신감을 강화시켰다. 마치 정체성이 문제인 양, 즉 그 안에 웅크리고서야 그녀 자신을 알아보게 되는 자발적인 속박이 문제인 양 말이다. 그녀는 어떤 비밀을, 유복함, 부유함, 무사태평함, 느긋하고 친절한 안락함과 대립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보기에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특징이었다.
그 세계 안으로 뚫고 들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그녀가 결코 접근하지 못할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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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랑을 증명해주는 확실한 표지들 중 하나는 자신들의 유년기-그것은, 요컨데 꿈에 대한 속내 이야기와 더불어 가장 소화되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를 환기시킴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들의 삶을 즉각적으로 길게 늘이는 데 느끼는 강렬한 기쁨과 관련된다고 읽은 적이 있다.
그건 거짓이다.
그녀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속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이야기들을 추방시켰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재빨리 단숨에 손짓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쫓아 버렸다. 나는 정말이지 그녀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다시 그녀를 조르면, 유년기에 대해서 네미는 단 한 문장만을 입에 올렸다. 끊임없이 이 문장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해졌다: "알겠어요? 나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네미는 말을 그쳤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그녀의 할 말을 다 한 것이다. 침묵해야 하는 순간부터는. 나는 이 문장을 몹시 사랑했다. 나는 두개의 언어로 찢어졌다가, 솔직히 말해서 가벼운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혼동했던 침묵과 음악에 마침내 이르게 되었던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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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관해서 말아자면, 세 가지 언어로 찢겨진 지극히 작은 내면의 유배지부터 시작하여 각 언어는 거기서 말해진 것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었으므로, 나는 아무것도 이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네미의 머릿속 내부로 침투해들어가, 믿음 그 자체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비밀스런 삶을 꿰뚫고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우리의 체험에 응답하는 그녀의 영혼의 메아리보다는, 그녀의 육체와 그 반응과 감각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녀를 그렇게도 복잡하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내성적이고 겸손하게, 그다지도 강압적으로, 그러면서도 또한 억압된 인간으로 만든 가난의 원인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의 청춘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결혼으로 이끈 그녀의 사랑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기울인 그녀의 애정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비밀과 인접한 곳에서 살았다. 나는 그녀의 가르침을 공유했고, 그리고 그녀의 육체를, 그 다음에는 그녀의 침묵을 공유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신앙심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코 꿰뚫어볼 수가 없었다. 곁눈으로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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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안의 모든 것은 뻗어나와 한 극으로 쏠린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지상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은 표출되어 흘러나온다. 뿌리를 내리고있는 장소 위로 확장되는 침묵, 스스로를 가리는 육체 위로 확장되는 비밀, 이러한 확장과 닫힘, 넓게 퍼져나가는 대양과 극도의 내밀함 속으로 집중되는 고립된 섬은, 다른 누구와도 아닌 오로지 우리 두 사람만이 공유하고 있던 어떤 심층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제3장 소리 없는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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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 나는 마침내 네미 사틀레를 이해한다. 적어도 르네상스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작곡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에 사실 듣기가 괴로우며, 그래서 그 곡들은 연주회장에서 무성으로만 연주해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것은 기이한 미사곡들이 될 것이다. 극장 안에서든 오페라 극장 안에서든 홀 전체가 침묵에 잠길 것이다. 사람들은 두 눈을 감은 채 각자 자신의 내부에서 되풀이되는 곡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박수 갈채 조차도 이 침묵의 음악에 상응하는 망령으로서 생략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희귀하고 유일한, 단 한 번만 행해지는 음악의 소환에 대한 모욕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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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작가,연주가, 번역가, 작곡가, 등등 사이에 차이가 있는것일까?
나는 이 단어들이 대단한것을 의미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모든 번역가는 마치 자신이 그 글을 쓰기라도 한 듯이 번역한다. 모든 연주자는 마치 자신이 그 곡의 작곡가인 양 표현한다.네미는 누구나 자신이 강렬하게 글고 쓰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은 연주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곤 했다.
오늘날의 많은 거장들은 네미의 이 지적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미의 말에 의하면, 연주되어야하는 것은, 악보의 음표나 작품의 정신이 아니라 작곡가의 영혼을 움켜지쥐고 있는 힘, 그 발굴되어야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발굴하기란 되풀이가 아니다. 발굴이란 파괴하는 것이다. 예술은 항상 파괴한다. 선사학자는 우물이나 무덤을 발굴할 때, 자신이 밝은 곳으로 끌어낸것을 돌이킬 수 없게 분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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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가 공들여 만들어낸 대다수의 걸작품들이 영원토록 알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걸작품들은 소리 없는 음악회와도 같다. 그것들 모두가 봉오리였다. 솟아오르다가 영원히 응결된 순간의 꽃봉오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것들의 부재는 부재로서 현존해야만 한다. 결여된 것으로서. 그것이 나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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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미 사틀레의 수업에서 논의되었던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주의력 그 자체, 집중의 가능성과 침묵 한가운데서 솟아나는 억제할 수 없는 분출의 가능성이었다. 테크닉은 집중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음악이 펼쳐지는 바탕이었던 침묵이 그로 인해 거의 드라마틱하게, 전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침묵 속에서, 악기의 깊은 곳에서, 마치 태어나는 행위처럼 음이 솟아올랐다. 태어나는 이 끔찍한 행위. 완전한 침묵. 그런 다음에 마치 최초의 울부짖음처럼 음이 솟아올랐다.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쾌감의 예측 불가능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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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나타 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라진 어떤 생각, 잊혀진 생각, 그리고 곡 자체인 생각을 찾고 있었다. 사실상 그것은 우리가 잊어버렸을 하나의 성, 하나의 이름, 한 얼굴이나 한 사람이 아니라, 언어가 갈라놓았으면서 알아보지 못할 어떤 상태를 찾고 있었다.
제5장
나는 아직도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진짜 본성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한 여자를 소유한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소유하지는 못하므로 내가 그녀를 소유한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 여자를 꿰뚫는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꿰뚫지 못한다. 내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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