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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아트라니)

제1장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바라보다 온통 하얗게 빛나고, 물결치고, 살아서 움직이는 봄날의 차가운 바다뿐이었다. ... 수평선이라는 허구의 선 위로 솟아오르려는 사원의 기둥들이 안개에 싸인 막연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곤 하였다.

  모든 열정에는 진저리쳐지는 포만의 정점이 있다.
  이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문득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는 이 열기를 증가시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혹은 열기를 지속시킬 수조차 없어서 그것이 곧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닥칠 불행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서뿐만 아니라 운명을 변경시키거나 지연시켜보려는 희망 때문에, 우리는 그 예방책으로 미리, 갑작스럽게, 은밀히, 길모퉁이에서, 서둘러 눈물을 흘린다.
  논증이란 새벽의 박명을 의미하는 고어이다. 그것은 잠깐 동안에 들이닥치는 희미한 빛 속에서 밝아지고 지각되는 모든 것이다. 논증이란 단호하기 그지없다. 하천이 범람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강물의 흐름을 바꾸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다린다.
  갑자기 불행으로 변해버린 응시 속에서 우리는 무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사랑은 열정으로부터 솟아나든가, 그렇지 않으면 결코 생겨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화석으로 굳어진 이순간을 마술에서 풀어내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 야릇한 길목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곳에서는, 영혼 깊숙이서 발견된 모든 것이 스스로가 더 이상은 찾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알아보기 시작한다.

*
... 우리는 시간, 유아기 언어, 그때 맛본 음식물, 우리들 안에 있는 원초적 순간에 얻어진 얼굴 표정과 신체 형태들, 이런 것들의 치마폭에 머물러있다. ... 우리의 삶은 그것을 태어나게 한 행위에 매혹된다. 삶의 근원에 홀린다. 여명에 홀린다. 우리에게 빛을 알게하고 우리를 눈부시게 한 최초의 여명에 홀린다. 몹시 축축하고 매우 오래된 몸으로 우리가 최초의 여명 앞에 이르렀음은 사실이다.

*

*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시선 속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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