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이브토에서 식료품점을 겸한 작은 카페를 경 영하는 부모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그런 만큼 작가는 자신이 속한 가난과 소외에서 벗어 나기 위해 젊은 날을 중등교사 자격시험과 교수 자격시험에 바쳐 현재 통신대학 교수로 재 직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조르쥬 페렉의 <사물들>을 읽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그녀의 작품은 한결같이 상실 감, 어떤 존재적 결핍이 글쓰기를 촉발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나는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의한 것처럼, 대학교수이며 소설가이기도 한 중년 여자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불륜을 내용 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발표해 전세계의 문단을 경악시켰던 아니 에르노. 실제로 그녀는 아 버지의 죽음을 내용으로 한 《아버지의 자리》(1984),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어떤 여자》 (1988),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이후의 기다림을 그린 《단순한 열정》(1992)처럼 큰 사건 을 겪은 후에야 작품이 하나씩 나올 만큼 자전적인 내용을 소설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역시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절망을 기록한 문병일기이다. 따라서 한계상황에 직면한 인간 본연 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정이 정제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일상적 소재를 깊이있게 응축시키는 데 사용한 단문과 극도 의 생략법은 작가의 절제된 슬픔을 뛰어넘어 인간의 삶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실존적 고 독감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사위를 몰라보고, 당신의 방을 못 찾고, 더러워진 팬티를 베개 밑에 감추면서 혼자서 목소 리 높여 중얼거리는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바라보면서 "'인생을 살면서 자기 스스로를 방어 할 줄 알아야 한다, 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악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던 억척스러 운 어머니를 회상하는 작가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젊었을 때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향 한 전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문병하고 있는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어머니의 가 혹한 피폐상태를 확인하게 될 따름이었다." 어머니의 고통을 자신이 분담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 음이 더욱 명백한 현실로 규정지어진다는 두려움은 결국 작가의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금기시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이제 공개함으로써 "어머니는 죽었으면서도 동시에 살아 있는" 생명의 이미지로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게 되었다. 기다림의 미학을 그린 작가의 다른 작품 《단순한 열정》처럼, '어머니는 죽었지만 결코 죽 지 않았다'는 지극히 동양적인 정서가 담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그래서 한 층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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