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적 모더니즘의 몇 가지 전략들
1. 추상 - 칸딘스키 피카소 몬드리안 정신적, 눈
2. 표현 - 청기사파 북구표현주의 마티스 잭슨폴록 손, 몸, 퍼포먼스
3. 초현실주의 - 정신분석학, 무의식의 영향. 막슨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4. 레디메이드 - 뒤샹 - 20세기 후반을 관통
... 미래파 러시아 구성주의
퍼스의 기호학(x stand for y)적 접근
◆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
도상 - 묘사. 지표 - 의미, 제유, 환유. 상징 - 인접성 유사성 없음, 언어의 자의성(소쉬르) 규약, 사회적 합의 convention.
(상징에서 도상을 읽어내려고 하는 성향 언어는 세계의 거울)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나오는 얘기다. 아득한 옛날 한 소녀가 살았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내가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전쟁터로 떠났다고 했던가? 어쨌든 연인과 보내는 마지막 밤. 이제 동이 트면 둘은 헤어져야 한다.
소녀는 연인을 곁에 잡아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영원히 곁에 둘 수 있을까? 그녀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소녀는 촛불로 사내의 몸을 비추어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펜으로 그림자의 윤곽을 떠 사내의 윤곽을
얻어낸다. 그러자 도공이었던 여인의 아비가 그 실루엣을 바탕으로 사내의 부조를 만들어 딸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그림 혹은 부조는 사내를 대신하는(stand for) 어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사내의 ‘기호’라 할 수 있다. 그 그림은 곁에 있다가(present) 부재하게 된(absent) 사내를 다시 존재하게(represent)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사내의 재현(representation)이다. 르네상스의 거장 알베르티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눈앞에 생생히 다시 갖다 놓는 회화의 신성한 힘(forza divina)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저 여인도 아마 그 그림에 눈을 돌릴 때마다 사랑하는 연인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체험을 했을 게다.
현대예술은 어떤가? 대상성이 사라진 현대예술도 여전히 ‘기호’라고 할 수가 있을까? 과거에 ‘그리다’라는 말은 목적어를 가진 타동사였는데, 오늘날 그 말은 자동사가 되었다. 가령 칸딘스키의 그림을 생각해 보자. 그의 작품은 더 이상 대상을 그리지 않는다. 그것은 형과 색의 순수한 유희다. 따라서 그것은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사물인 셈이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의 기호를 만들어냈다. 현대의 화가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은 사물을 창조하려 한다. 이렇게 대상성을 잃은 현대예술은 기호가 아닌 새로운 사물, 일종의 ‘오브제’가 된다.
‘오브제’라 함은 원래 예술의 영역에 들어온 자연 혹은 일상의 사물을 가리킨다. 지난번에 얘기한 뒤샹의 변기를 생각해 보라. ‘오브제’는 글자 그대로 대상이다. 기호란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대신하는(stand for) 것이다. 하지만 변기가 변기를 대신할 수는 없는 일. 변기는 변기일 뿐이지 변기의 기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단토에 따르면 모든 오브제는 일종의 ‘은유’라고 한다. 뒤샹이 미술관에 들여온 그 변기도 실은 온갖 가지 ‘의미’를 뒤집어쓰고 있다. 바로 그래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변기 역시 모종의 의미작용을 하는 일종의 기호라는 얘기가 된다.
다시 칸딘스키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그것은 순수한 형과 색의 구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칸딘스키가 그 작품으로써 (칸트가 말하는) 순수한 형식의 유희를 하려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무 것도 재현하지 않는 그 시각적 구성을 통해 그는 어떤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에 담으려 한 그 “정신적인 것”이란 세기가 바뀌던 즈음에 러시아 풍토에서 자라난 어떤 신비주의 사상으로 안다. 따라서 비록 대상을 가리키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어떤 고차원적인 정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호인 셈이다.
미국의 기호학자 퍼스에 따르면 기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유사성을 토대로 지시작용을 하는 도상(icon)이다. 가령 우리는 문짝에 붙어 있는 치마와 바지 입은 사람의 이미지를 보고, 자기 성에 맞는 화장실을 찾아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인접성을 가지고 지시작용을 하는 지표(index)다. 아스팔트 위에 난 타이어 자국은 누군가 그 자리에서 급정거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상징(symbol)으로, 그저 규약에 따라 지시작용을 하는 관습적 기호다. 가령 사과와 ‘사과’라는 말은 사이에는 유사성도, 인접성도 없다. 하지만 오랜 관습적 규약에 따라 ‘사과’는 사과를 가리킨다.
그림이 ‘기호’라면 그것도 이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앞에서 얘기한 ‘회화의 발명’을 생각해 보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그 전설은 회화가 어디까지나 유사성에 입각한 도상-기호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니, 그 전설을 전달하는 그림 자체도 이미 도상-기호다. 그 안에는 남자의 그림이 있고, 여자의 그림이 있고, 그림자의 그림이 있다. 그 형상들은 닮음을 통해서 그림 밖의 남자와 여자와 그림자를 가리킨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서구의 모든 회화는 이렇게 닮음을 통해 사물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도상-기호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예술에는 혁명이 일어난다. 이 혁명은 곧 예술의 기호적 성격에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다. 예술이 도상-기호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자 소위 ‘추상’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회화가 등장한다. 이 회화는 더 이상 닮음을 통해 액자 밖의 대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호’이기를 그친 것은 아니다. 그저 도상이 아닌 다른 것, 즉 지표나 상징으로 성격을 바꾸었을 뿐이다. 현대 회화 앞에서 대중이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추상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대중은 그것을 도상으로 보고, 그 안에서 헛되이 재현된 사물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추상을 분류할 때 우리는 그것을 흔히 ‘차가운 추상’과 ‘뜨거운 추상’으로 나누곤 한다. 그림의 성격을 분류하기 위해 온도계를 들이대는 버릇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몰라도, 적어도 추상에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물을 재현하기를 포기한 이상, 추상회화는 더 이상 도상-기호가 될 수는 없고, 뭔가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남은 것은 둘 뿐이다. 지표 아니면 상징. 내가 보기에 도상이기를 포기한 회화가 이 둘 중 어느 것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구별되는 두 종류의 추상이 성립하는 것 같다.
먼저 ‘차가운 추상’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보자. 몬드리안은 회화가 기호적 성격이 변해 가는 과정을 연작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 연작 속에서 나무의 형태는 점점 단순화하여 마침내 나무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 도상(icon)으로 출발한 그림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에는 현실의 나무와 전혀 닮지 않은 상징(symbol)이 된 것이다. 대개 기하학적 추상은 이렇게 도상을 상징으로 바꾸어 놓는 데에서 성립한다. 화가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정신적 가공을 거치면, 이미지는 대상과의 유사성을 잃어버리고, 관습적, 규약적 기호에 가까워진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은 어떤 의미에서 플라톤의 철학을 닮았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것들 속에서 보편적이고, 필연적이고, 불변적인 본질을 추출해내려 한다. 개별적이고,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것들을 보는 것은 ‘육체’의 눈이요, 그 속에서 다시 보편적이고, 필연적이고, 불변적인 것을 읽어내는 것은 ‘정신’의 눈이다. 실제로 기하학적 추상을 하는 화가들은 종종 자신들이 가시적 형태 속에 감추어진 비가시적 본질을 추구한다고 믿는다. 칸딘스키도 그랬고, 몬드리안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대단히 정신주의적인 예술이다.
그럼 ‘뜨거운 추상’은 어떤가? 가령 잭슨 폴록의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캔버스를 수직으로 세우지 않고 수평으로 뉘어놓고 작업을 한 것으로 안다. 중력을 이용해 물감을 흘리는 소위 ‘드리핑’의 기법도 실은 캔버스가 바닥에 깔려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수평으로 누운 캔버스 위로 물감을 듬뿍 묻힌 핀젤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중력을 이기지 못한 물감들이 후두둑 화면에 떨어져 여러 가지 선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작업의 대부분이 우연에 맡겨지므로, 여기서 현실의 대상을 닮은 형상이 얻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연히 흘린 커피자국이 우연히 사람의 형상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우연에 의해 생성된 이 혼란스런 그림은 대체 뭘 가리키는 걸까? ‘닮음’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바깥의 대상을 가리킬 수는 없다. ‘드리핑’으로 화면에 발생한 카오스의 형상이 지시하는 것이 있다면 단 하나, 그 위로 지나갔던 손의 움직임이다. 마치 도로 위에 찍힌 타이어 자국이 그 위로 지나간 자동차의 움직임을 암시하듯이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물감의 자국들은 그 위로 지나간 손의 움직임을 지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폴록의 작품은 지표(index)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화가의 움직임(action)의 기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액션페인팅’이라 부르는 것이다. 폴록에게 예술은 그리는 행위 그 자체였지 그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고전회화는 도상이었다. 도상이기를 포기한 현대회화는 지표나 상징으로 성격을 바꾼다. 이에 따라 현대의 추상예술도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대척점을 이룬다. 몬드리안의 작품이 영원불변한
‘존재’의 상징이라면, 폴록의 작품은 시시각각 일어나는 ‘생성’의 지표다. 몬드리안의 추상이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필연’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폴록의 추상은 디오게네스의 철학처럼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세계를 지향한다. 몬드리안이 손을 눈에
종속시킨다면, 폴록은 눈을 손에 종속시킨다. 그리하여 몬드리안의 작품이 정신주의적이라면, 폴록의 작품은 육체적이다.
도상지표상징 뒤섞인 프란시스 베이컨 -닮게그려라. 닮지 않은 방식으로(형용모순) 에네르기리
◆ 오브제 전략의 재등장
어떤 의미에서 ‘오브제’는 중세 예술의 특징이다. 당시의 예술은 번쩍이는 귀금속, 휘황찬란한 보석 등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술과 공예가 서로 구별되지 않았던 이 시대에는 기호와 사물의 구별도 뚜렷하지
않았다. 가령 우리 앞에 번쩍이는 황금 옷을 차려 입은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있다고 하자. 이때 그림 속의 금빛은 그림 밖에
있다고 상정되는 마리아의 옷 색깔을 가리키는 기호이나, 동시에 그 자체가 금이라는 사물이기도 하다. 중세의 예술에서는 이렇게
표상과 실재가 구별되지 않은 채 서로 얽힌다.
여기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르네상스에 들어와서다. 그 유명한 ‘회화론’에서 알베르티는 당시의 장인들에게 금을 묘사할 때 금 대신에 물감을 사용하라고 주문한다. 이로써 기호와 사물, 표상과 실재 사이에 명확한 단절이 이루어진다. 중세의 장인들이 금을 묘사하기 위해 금을 사용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금을 가리키기 위해 물감을 사용한다. 과거의 그림 속에는 정말로 금이 들어 있었다면, 이제 우리가 보는 금빛은 금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료의 속성이 아니라, 예술적 착시 효과로 만들어낸 금의 ‘환영’일 뿐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재현회화는 바로 이 ‘환영주의’ 원리를 추구한다. 존재는 주체와 객체, 표상과 실재, 기호와 사물로 엄격히 분리되고, 인식은 앞의 항이 뒤의 것을 거울처럼 비추는 반영의 관계로 상정된다.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오브제가 등장하는 것은 이 환영주의가 무너진 것과 관계가 있다. 근대인들이 세계와 재현(=표상)의 관계를 맺었다면, 세계를 대하는 현대인의 태도는 더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이렇게 세계를 대하는 데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현대인의 태도, 이것이 현대예술에서 다양한 오브제 전략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 콜라주
작품에 사물을 끌어들이는 최초의 화가는 피카소와 브라크였다. 그들은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 낸 조각들을 붙여서 화면을 구성하는
이른바 ‘파피에 콜레’를 도입하였다. 이 콜라주 기법은 말할 필요도 없이 큐비즘의 전략과 관련이 있다. 재현론에 따르면, 2차원은
재현의 ‘평면’이며 3차원은 사물의 ‘공간’이다. 사물은 공간 ‘속’에 들어 있고, 재현은 평면 ‘위’에서 이루어진다. 큐비즘은
이 재현의 토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현실의 공간 속에 들어 있는 사물을 그대로 평면에 끌어들여, 예술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회화적 평면의 환영성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콜라주는 평면과 공간, 기호와 사물, 표상과 실재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콜라주’ 전략은 다다이스트들에게도 널리 활용되었다. 흔히 ‘다다’라고 하면 포토몽타주를 연상하나, 사실 다다는 신문, 잡지, 입장권, 계산서 등 다양한 사물을 도입하는 콜라주의 실천을 병행하였다. 물론 그들의 ‘콜라주’는 큐비즘의 전략과는 별 관계가 없고, 외려 몽타주의 원리에 가깝다. 오늘날의 사회는 모든 인간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고체적인 접촉이 아니라 화폐를 매개로 한 추상적 관계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고전적 재현은 현실의 진리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런 시대에 복잡한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려면 가시적 현실의 총체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단편들을 새로이 ‘조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 뒤샹의 레디메이드
초현실주자들도 오브제를 즐겨 활용하였다. ‘초현실주의’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해안의 조약돌, 물결에 떠밀려온 부목(浮木)과 같은
‘오브제 트루베’다. 초현실주의에서 ‘오브제’의 역할은 다양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은 전위(transposition)의
전략을 따른다. 일상에서 우리가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물이 예술가에게 작품으로 ‘선택’될 때, 그 사물은 우리에게 색다른 의미를 띤
것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일종의 ‘낯설게 하기’의 효과다. 즉 하나의 사물이 일상적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엉뚱한 곳에 배치될
때, 우리가 친숙하게 여겨 그냥 지나쳤던 그 대상이 어떤 낯선 것으로 다가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적 현실의 뒤로 (그 동안
우리에게 의식되지 않았던) 또 하나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역시 어느 정도로는 이 ‘전위’의 전략을 따른다. 기성품을 엉뚱한 장소에 갖다 놓으면 그 사물은 그것이 원래 담당하던 기능에서 떨어져 나와, 순수한 미적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화장실의 변기와 미술관의 변기를 우리는 각각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초현실주의의 ‘오브제 트루베’와는 다른 목표를 지향한다. 일상적 현실 속의 범상한 사물을 미술관이라는 문화적 문서고에 옮겨놓음으로써, 일상과 예술의 차별을 없애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범상한 것과 미적인 것의 위계적 구별 위에 서 있는 근대적 예술제도를 공격하기 위한 반(反)미학의 실천이다.
◆ 아상블라주
콜라주에서 도입한 사물은 신문, 잡지, 계산서, 입장권과 같은 평면적인 사물이었다. 오브제 트루베나 레디메이드의 경우에는 주로
3차원의 입체성을 가진 사물을 통째로 작품으로 축성한다. 아상블라주에서 이 두 전략은 합류한다. 아상블라주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마치 콜라주처럼 작품에 부착시키기 때문이다. 라우셴베르크의 ‘침대’(1955)는 널빤지에 베개와 누비이불을 부착시킨 후 거기에
페인트칠을 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를 그는 ‘콤바인 페인팅’이라 불렀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아상블라주는 콜라주를 공간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서는 게 아니라 작품이 열어주는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해프닝’의
체험을 하게 된다.
당시에 미국은 추상표현주의의 끝물로 접어들고 있었다. 때문에 아상블라주는 한때 예술 밖으로 추방되었던 현실이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미국의 팝아트는 유럽에도 반향을 일으켜, ‘누보 레알리즘’이라는 흐름을 낳았다. 이들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세계, 즉 상품과 광고의 세계를 작품 속에 끌어들였다. 아르만은 유리 액자 안에 쓰레기와 일상의 사물 등을 접착시켜 집어넣는 정크아트를 선보였고, 장 탱글리는 고철과 폐품을 활용한 키네틱 아트를 실천했다. 이 역시 ‘해프닝’의 성격을 갖고 있어, 1960년 MOMA에서 그는 엔진과 기계의 부품을 조립하여 만든 ‘뉴욕에 부치는 헌사’(1960)를 실연한 바 있다. 몇 층 높이의 이 거대한 작품은 관람객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불을 내뿜으며 자기 자신을 파괴했다고 한다.
◆ 워홀의 시뮬라크르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후에 워홀의 ‘브릴로 박스’로 부활한다. 예술과 일상의 벽을 허문다는 점에서 뒤샹과 워홀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또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령 뒤샹의 반미학에는 저항적 제스처가 느껴지는 반면, 미국의 팝
아티스트들은 체제에 매우 순응적이다. 이들의 레디메이드 전략에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워홀의 유명한 박스는 실제의
박스가 아니라 널빤지에 아크릴로 그린 것이다. 그의 캠벨 수프 깡통도 마치 슈퍼마켓의 전시대 위에 놓인 것처럼 전시되었지만, 실은
실제의 그려진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엄밀한 레디메이드가 아니라, 가짜 레디메이드, 즉 레디메이드의
모조(fake)라 할 수 있다. 이 모조는 원본과 복제의 전통적인 위계를 무너뜨린다. 원래 복제는 원작을 베낀 것이다.
워홀은 이 상식을 뒤집는다. 자본주의적 생산(production)은 하나의 프로토타입을 이용해 똑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복제(reproduction)의 성격을 띤다. 슈퍼마켓에 쌓여 있는 브릴로 박스 역시 기계로 찍어낸 복제들이다. 하지만 워홀은 널빤지와 아크릴을 이용해 이 복제를 흉내 낸다. 이렇게 창조된 워홀의 박스는 작가의 손길을 거친 원작이고, 그것의 모델이 된 것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복제품이다. 한 마디로 그는 복제로 원작을 베끼는 게 아니라 거꾸로 원작으로 복제를 베꼈던 것이다. 여기서 워홀은 갑자기 회화(원작)로 사진(복제)을 모방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선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박스는 뒤샹의 샘이나 라우셴베르크의 침대보다는 차라리 그의 마릴린 먼로 연작에 가깝다.
◆ 예술에서 사물로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들고 왔을 때 그는 그것을 일종의 ‘반어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워홀은 이미 이 장난을 더 이상 반어가
아니라 직설법으로 이해한다. ‘오브제’는 예술과 사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오늘날 예술이 될 수 없는 사물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사물은 예술가의 손에 들려 미술관으로 들려오거나, 아니면 그저 있는 곳에서 예술가에게
작품으로 선언되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된다. 하지만 사물이 예술이 된다면, 예술이 또한 사물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오브제의
전략은 사물의 용도를 폐기함으로써 그것을 미적 대상으로 변용(變容)시키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용대상으로서
기능을 잃지 않은 채 그대로 예술이 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이모 초버닝은 고속도로에서 뮌스터로 들어오는 진입로에 ‘조각 프로젝트 뮌스터 1977’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것은
전시회를 알리는 플래카드이자 동시에 그의 출품작이기도 했다. 이 전시회에 볼프강 빈터와 베르톨트 회르벨트는 음료수 병을 나르는
박스로 지은 ‘박스 집’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주최측에 의해 방문객을 위한 안내대로 활용됐다. ‘도쿠멘타 1997’을 위해
초버닝이 디자인한 홀은 전시회의 일상적인 토론회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오브제’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고 하나,
역설적으로 그것은 은밀하게 범상한 것과 미적인 것의 구별을 전제로 하여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대상으로서의 작품과 함께,
오브제의 전략은 목표를 완수하고, 스스로 소멸할 단계에 도달한다.
2차대전 이후 현대미술은 그 중심지를 유럽에서 미국, 즉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기게 된다. 수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유럽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피폐하게 되었고 이에 반해 미국 신대륙은 전쟁의 피해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오히려 전쟁의 와중을 틈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전쟁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도피하는 인구가 많았고 그중에는 내노라 할 석학들과 예술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의 종료를 기점으로 현대미술은 뉴욕에 기반을 둔 미술가들에 의해 주도된다.
미국 예술이 유럽을 베끼는 데서 벗어나 문화적 자의식을 획득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바로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다. 그가 없었다면 그 유명한 잭슨 폴록도 지금쯤 아예 존재가 없거나, 아니면 미술사의 후미진 귀퉁이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폴록의 등장은 미국의 작가가 세계적 중요성을 띄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추상표현주의와 더불어 미국의 예술은 밖의 영향을 받는 데서 벗어나 밖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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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연보랏빛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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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형식에서 예술의 본질을 찾았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예술 작품이 굳이 윤리적으로 선하거나 진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이러한 칸트주의 미학에 입각하여 자신의 이론을 펼쳐 나간다.
칸트의 형식미학으로 추상표현주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칸트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서 예술의 본질을 찾았지만, 그가 예술의 가상성 자체를 부정했을 것 같지는 않다. 칸트에게 아름다움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 즉 내용이 없으면서도 ‘마치’(as if)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식의 가상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칸트는 아직 ‘형식’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나, 폴록은 형 자체를 파괴하여 화폭을 무정형의 카오스로 돌린다.
과거에 회화가 대상을 탐구하고 모방했다면 모던에서는 회화가 회화 자신을 반성하고 탐구한다. 그린버그는 왜 폴록에 주목했을까? 아마도 그의 작품이 회화라는 매체를 물감 바른 평면으로 되돌렸기 때문일 게다. 그린버그가 보기에 모더니즘의 본질은 형식주의에 있다. 이 형식주의는 크게 두 가지 원리 위에 서 있다. 공간의 환영을 포기하고 회화의 세계가 2차원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평면성’의 원리. 그리고 회화가 그림 밖의 세계가 아니라 제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자기 지시’의 원리.
1910년에 파울 클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연과 자연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구통 속의 내용물에 대한 화가의 태도다.” 폴록의 작품은 글자 그대로 “화구통 속의 내용물에 대한 화가의 태도”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물감은 물감일 뿐, 그 밖의 대상을 표상하지 않는다.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작품은 당연히 환영적 깊이가 없는 평면, 즉 물감 칠한 캔버스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개념은 협소하기 그지없다. 그 개념에 따르면 ‘모던’은 오로지 칸딘스키, 몬드리안, 파울 클레, 잭슨 폴록, 바넷 뉴먼과 같은 작가들로 축소된다.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속에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실제로 그린버그는 초현실주의를 불순한 것으로 보았고, 뒤샹을 진지하지 못한 장난으로 간주했다. 그런 그가 앤디 워홀을 평가할 수는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린버그에게 모더니즘의 본질은 한 마디로 자기 지시성, 즉 회화가 자연이나 현실에 대한 탐구(=재현)를 포기하고, 자기 자신의 가능성(=순수한 형과 색의 조형적 잠재성)을 전개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더니즘 전체의 기획을 설명할 수 있을까? 비록 자기 지시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평면성과 표현수단의 자립화가 모더니즘의 특징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이 모더니즘의 추동력 자체를 이루는 요소인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은 칸트주의가 아니고, 모더니스트들은 칸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린버그는 뒤샹을 진지한 예술가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린버그의 틀로도 실은 뒤샹의 의의를 설명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령 과거의 화가들이 회화라는 수단으로써 바깥의 자연과 현실을 탐구했다면, 현대의 화가들은 회화라는 수단으로써 회화 자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마찬가지로 뒤샹의 오브제 전략은 예술을 통해서 하는 예술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다.’ 이런 식으로 뒤샹의 전략 속에서 자기 지시성을 끄집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린버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칸트의 형식미학의 선입관에서 자기 지시성을 오로지 ‘평면성’만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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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넷 뉴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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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제작하고 있는 잭슨 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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