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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마라이, 열정

그는 부모님이 서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여행 탓으로 돌렸다. 근위 장교는 사냥을 했다. 그는 다른 것과 다른 사람들, 낯선 도시, 파리, 성, 낯선 언어와 풍습이 존재하는 세상을 섬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곰과 노루, 사슴을 죽였다. 그래, 다 여행 때문이었을 게야.

타고난 성향과 외적 상황에 밀려 때 이른 고독 속으로 칩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콘라드는 조롱과 경멸 섞인,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호기심 어린 어조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어린아이와 지각없는 사람들이나 삶의 거너편 다른 기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을 가진다는 어투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향수가 어려 있었다. 의문스럽고 무심하며 두려움을 자아내는 고향, 세계라는 이름의 고향을 청춘은 끊임없이 갈구하기 마련이다. 이 세계에서의 체험 때문에 근위 장교의 아들을 다정하고 유쾌하게 넌지시 조롱하는 콘라드의 목소리는 오만하게 들렸지만, 갈구하는 자의 공허한 목마름이 담겨 있었다.

처음 맛본 사랑의 열광, 그리고 사랑이 의미하는 모든 것, 그리움, 질투, 고독과의 싸움을 그들에 삶에 몰고왔다.

태엽을 감은 기계처럼, 지난 몇 시간 사이에 성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가구, 아마 덮개를 벗겨낸 안락 의자와 소파만이 아니라, 벽의 그림, 반들거리는 대형 철제 촛대, 유리 진열장과 벽난로 위의 장식품들도 다시 살아난 것 같앗다. 벽난로에는 불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늦여름 자정이 지난 시간에는 차가운 증기가 축축하고 끈적끈적하게 방을 뒤덮기 때문이었다. 물체들이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인간과 관계를 가지고, 인간의 행위와 운명에 참여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보였다.

"현실은 진실이 아닐세."

빈. 그것은 나에게 세계를 위한 음차같은 것이었어. 빈이라고 말하는 것은 음차를 두들긴 다음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이 소리를 듣는지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았지. 나는 그것으로 사람들을 시험했네.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은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어. 빈은 도시일 뿐 아니라 영원히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소리기 때문이지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어. 나는 가난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네.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비도 친구나 다름없었어. 나는 열대에서 비가 내리면 항상 빈의 소리를 들었네. 다른 때도 마찬가지였지. 정글 속에서 히칭 집 현관의 곰팡이 냄새가 이따금 생가났어. 사람의 마음속에 순수한 감정들이 깃들어 있는 것 처럼, 음악과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이 빈의 돌, 사람들의 시선과 몸짓에 숨어 있었지. 이제는 감정 때문에 마음 아플 일이 없다는 것을 자네도 알 걸세. 겨울의 빈과 봄의 빈. 쇤보른의 가로수. 사관학교 침실의 푸른 불빛. 바로크 동상이 있는 커다란 흰색 층계참. 프라터에서의 아침 승마. 승마 학교의 백마들. 그 모든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그래서 한번 더 보고 싶었지.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짉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때가 되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모든 사람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14장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지."
  상대방이 아무런 대꾸도, 반박도 하지 않고, 손짓이나 눈빛으로 자신에 대한 혐의를 들었다는 표시도 하지 않자 그는 말한다.
  "밤과 낯,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가 서로 교대하는 순간이었어. 아마 또 다른 사물들도 서로 교대할 게야. 심연과 천상, 인간과 세계의 밝음과 어둠이 마주치고, 잠에 취한 사람이 고통스러운 꿈에서 깨어나고, 환자들이 신음하기 시작하는 최후의 시각이네. 밤의 지옥이 종말을 향해가면서 고통을 견디기가 쉬워질 거라고 느끼기 때문이지. 밤의 어두운 혼돈 속에서 병적인 욕망과 은밀한 동경에 시달리고 움찔 흥분했던 모든 것을 밝은 낮의 빛과 질서가 활짝 펼쳐놓는다네. 사냥꾼과 짐승들은 이 순간을 사랑하네. 아주 어둡지고, 밝지도 않은 순간이지. 모든 유기적인 존재, 식물과 동물, 인간이 세계라는 커다란 침실에서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비밀과 사악한 생각들을 내뿜는 양, 숲에서 거친 야생적인 냄새가 나네. 잠에 취한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세계가 다시 생각나 한숨을 내쉬듯이, 이 순간 살며시 바람이 이네. 축축한 나뭇잎, 양치 식물, 썩어가는 나무토막, 곰팡이 핀 전나무 열매, 땅에 떨어진 침엽수와 활엽수가 만들어낸, 이슬 맺혀 반짝이는 부드러운 양탄자 냄새가 자네 코에 진동하지.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이 땀에 절어 포옹하고 있을 때 같아. 마법적인 순간이지. 옛 조상과 이교도들은 깊은 숲 속에서 경외심에 넘쳐 얼굴을 동쪽으로 돌리고 양팔 벌려 그 순간을 찬미했다네. 그들은 물질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마법에 걸린 듯이 빛, 인식과 오성을 끊임없이 기대했어. 이 시각이 되면 사슴은 샘물을 향해 길을 나서지. 밤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순간이네. 아직 숲 속 여기저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네. 야행성 동물들 삶의 특징이랄 수 있는 기민함, 대사냥이 계속되는 중이지. 살쾡이는 여전히 매복하고 있고, 곰은 노획물의 마지막 조각을 잡아 찢고, 발정한 사슴은 달밤의 정열정인 순간을 회상하네. 그것은 사랑의 투쟁이 벌어졌던 공터 한가운데 서서, 결투에서 상처입은 머리를 오만하게 치켜들고 핏발 선 진지한 눈빛으로 정열을 잊을 수 없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네. 깊은 숲 속에서는 밤, 그리고 밤이라는 낱말이 의미하는 모든 것, 노획물, 사랑, 배회, 목적 없는 삶에의 기쁨,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아직 살아 있지. 숲의 수풀 속에서뿐 아니라 인간 심장의 어둠 속에서도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순간이네. 인간의 심장도 늑대나 사슴의 사냥 본능 같은 야성적인 밤과 흥분을 알기 때문일세. 황야의 밤에 퓨마와 독수리, 자칼이 숨어 있듯이, 꿈, 동경, 허영심, 이기심, 사랑의 광기, 질투와 복수심이 인간의 밤에 매복하고 있지. 그 순간은 인간의 심장이 낮도 밤도 아니네. 영혼의 은밀한 구석에서 야수들이 기어 나오고, 몇 년, 아니 몇십 년 동안 길들이고 제어했다고 생각한 것이 심장 안에서 활기를 되찾아 우리의 손을 움직이는 순간이지...... 모두 헛일이었다네. 이러한 움직임의 진실한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정해보았자 부질없는 짓이네. 그것은 우리의 의도보다 강해서 억누를 수 없네. 꿈쩍도 안 하지. 어떤 인간 관계든 밑바탕에는 그 관계를 만들어낸 뚜렷한 동기가 자리하고 있네. 그것은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하고, 온갖 말을 해도 변하지 않아. 사실은 자네가 숭고한 관계의 열정, 그래, 사랑에 버금가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십사 년 동안 나를 증오했다는 것일세. 자네는 나를 증오했어. 감정, 정열이 인간의 영혼을 가득 채우면, 타오르는 장작 더미 아래에서 호의와 나란히 복수심도 빨갛게 달아올라 연기를 낸다네...... 정열은 이성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지. 정열은 상대방에게서 뭉덧을 받든 상관없이, 자신을 표출하려고 하네. 다정함과 정중함, 우정, 인내심을 대가로 받아도, 자신을 끝까지 실현시키려들지. 모든 커다란 정열은 희망이 없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정열이 아니라 현명하게 계산한 타협, 얼치기 이해타산과의 흥정이기 때문일세. 자네는 나를 증오했어. 그것은 사랑만큼이나 격렬하게 자네와 나를 결합시켰네. 자네가 왜 나를 증오했을까? 나에게는 이 감정에 대해 깊에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네. 자네는 나한테서 돈 한푼, 선물 한번 받지 않았지. 자네는 이 우정에서 순사한 형제애가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어. 내가 당시 그렇게 젊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아주 의심스러운 위험한 신호라는 것을 알았을 걸세. 일부를 받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 전부를 원하는 법이지. 자네는 소년 시절, 이 세상 최고의 것만을 가르치고 존중하는 그 기묘한 곳에서 우리가 사귄 첫 순간부터 나를 증오했어. 자네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내게 있었기 때문에 나를 증오했지.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어떤 능력이나 특성이었을까? 자네는 항상 남들보다 많이 알았으며, 본의 아니게 최고 우등생이었고, 부지런한 모범생이었네. 재능 있는 생도였지. 자네에게는 말 그대로 도구, 악기가 있었기 때문일세. 음악이라는 비밀이 있었지. 자네는 쇼팽의 친척이었으며, 항상 거만하게 뒤로 물러나 있었네. 그러나 자네 영혼의 밑바탕에는 갈등, 자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싶은 동경이 숨어있었어. 인간에게 그것보다 더한 시련은 없네.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세상에서 차지하는 것하고 타협할 때에만 삶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일세.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타협할 줄 알고, 또 이렇게 현명하게 굴어도 삶으로부터 어떤 칭송도 받지 못하는 것을 알아야 하네. 자신이 허영심 많고 이기적이거나 머리가 벗겨지고 똥배가 튀어나온 것을 알고 감수해도 가슴에 어떤 훈장도 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해. 그렇다네, 어떤 칭찬도, 보답도 받지 못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네.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어. 그것이 바로 비결일세. 자신의 성격과 본성을 받아들이는 도리밖에 없지. 제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고 부족한 점이나 이기심, 탐욕을 인식해도 변할 수 없기 때문이야.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참아야 하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거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참을 수밖에 없네. 배반과 신의 없음도 참아야하고, 자기보다 인품이나 지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어도 참아야 하지.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일세. 여기 숲 한가운데서 일흔다섯 해 동안 나는 그런 것들을 배웠네. 그런데 자네는 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없었지."
  그는 나지막 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말한다. 그리고는 입을 다문다.
  "자네는 물론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 못했어."
(축약)신비로움. 세세한 일들의 크고 선명함. 점차 성격-지성, 배어나오는 씁쓰름한 특이한 오만-이 굳어지면서 결여된 것들-세상으로 부터의 호의와 존중-이 분명해지는 것. 시기심. 자네가 나와 내 주변에서 신의 은총과 선물로 느꼈던 것은 그저 남의 말을 잘 믿는 것에 지나지 않았네. 경쾌함, 편견없음. 경쾌화고 쾌할하게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사랑받는 능력. 심각한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으며 사랑과 신뢰에 둘러싸여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떠난 적이 없었네. 은총을 소중히 여기는 동안만 그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몰락하게 되어있네. 세상은 마음 깊이 겸손하고 겸허한 사람만을 잠시 참아준다네.
  서로를 보충했고 하나를 이루었던 시절. 유년시절 깊숙한 곳에서 움터 질기게 뒤엉킨 관계에 어느 날 금이 가는 일이 잇었지. 신비스러운 유년 시절은 지나가고, 일상적인 말로 우정이라고 불리는 미묘한 관계.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일세. 우리는 여전히 친구이네.
  우리 둘만이 숲 한복판에 고독하게 있었네. 밤과 여명, 숲과 동물들의 고독 속에 있었지. 그속에 있으면 삶과 세상의 길을 읽었으며, 언젠가는 이 황량하고 위험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한순간 갖게 된다네. 단 하나의 진실한 고향, 숲과 깊은 물, 생명의 근원지 말일세. 나는 깊은 숲 속에서 사냥을 할 때면 항상 그렇게 느꼈다네.
 












애써 솔직하려고 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두려워하는 게 있다는 것을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지.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 순수한 비밀로 자신의 삶이 채워질 것을 두려워한다고나 할까.

우리는 세세한 것들을 통해서만 본질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네.
아버지도 한 여인을 만나 다시없이 사랑했지만, 그 옆에서 끝내 고독하셨네. 두 분이 서로 다른 기질과 삶의 리듬을 가지 두 부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지. 우릴 묶어준 것은 같은 감정. 같은 동경, 같은 희구, 같은 무력하고 슬픈 욕구.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찾기 때문. 삶의 가장 큰 비밀과 최대의 선물은 '비슷한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일세. 다른 삶의 기슭. 바꿀 수 없는 취향, 성향, 삶의 리듬.

자유. 고귀한 야성에 대한 자부심.
그녀가 가져온 것은 젊음만이 아닐세. 아니, 그녀는 정열과 오만, 조건 없는 감정을 좇는 자유로운 자의식을 가져왔지. 그 이후로 나는 세상과 삶이 선사하는 모든 것에 그렇게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네. 음악, 숲에서의 새벽 산책, 꽃의 색깔과 향기, 예지에 찬 인간의 말 한 마디. 우아한 천이나 동물을 크리스티나처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네. 나는 삶이 주는 소박한 선물에 이 여자처럼 기뻐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어. 살마과 동물, 별과 책, 그녀는 모든 것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 그러나 잘난 척하거나 전문 지식에 사로잡힌 고루한 사람들과는 달랐네. 삶이 보여주고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의 선입견 없는 기쁨이었지. 이 세상 모든 현상이 그녀의 개인적인 일인 듯이. 그리고 이 선입견 없는 친밀함에는 겸손, 삶이 커다란 은총이라는 인시기 배어있었네.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주변의 세계가 붕괴했다는 느낌. 배신감과 의심. 절망. 질투심과 실망, 허영심, 분노... 회한... 기다림.

  명예와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과 현실의 삶에 충실한 부류, 현실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정신과 예술을 좇는, 삶의 다른 기숡에 선 부류, 두 부류로 인류를 가르는 인간 존재의 이원성, 운명과 삶과의 관계, 타고난 본성이나 성격이 삶에서 하는 역할의 문제...
  진정 원하는 것을 아는 것, 행동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