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
이렇게 그는 싸우는 자에서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진 자가 되었다. 그리고 꽃의 기억, 전투의 기억, 동물의 기억, 여자의 기억, 본 적도 없는 강의 기억, 왕의 기억, 악사, 풀, 새, 구름, 태양 같은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마침내 이 예전의 살인자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 어떤 신의 조재를 질퍽한 진흙 물감 속에 녹여 넣는 방법을 배웠다.
그가 전사에서 예수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왜냐하면 인도에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예술가라는 신분이 분명치 않은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피리 소리를 내더라도 그는 악사이고, 아무리 고운 빛깔을 빚어내더라도 그는 화공이라는 직업인다. 한 인도인이 오십 년 전에 말했듯이, "인도에서 '예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민족 체험의 표현이며 생활의 목적에 닿는 것, 요컨대 일상의 빵 같은 것이다."
태양은 아련한 백색 섬광이 되고, 사물의 글미자는 지표에서 유리된 것 처럼 서서히 그 능선을 지워가는 곳.
태양, 모래 먼지 속, 유백색의 밤 아래 전사의 긍지를 앗아가고도 남을 굴욕을 감수하고 그림그리는 자가 된 사람... 그는 누구인가. 결국 한 명의 사라남은 라지푸트족 전사랄 수밖에
서툴지만 소박하고 좋은 그림이었다. 이름 없는 자만이 그릴 수 있는, 붓을 쥔 손의 애처로움이 전해지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더불어 그 손의 흔적이 보여주는 옛사람의 인격도 우리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풍경 속에서 유한한 생명을 소모하며 숨 쉬고 있는 무명의 그림은 좋다.
과학자와 고고학자와 미술 연구가와 정치가는 함께 지혜를 짜내어 그림을 보존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인간의 횡포다. 있어야 할 장소의 고기를 쐬다가 마침내 때가 되어 그림 속 여자의 배꼽 언저리에 붙은 안료가 쪼글쪼글해지고, 말려 올라가고, 그러다가 벗겨져 맥없이 툭 떨어지는 것을 가슴 철렁하면서 보고있으면 된다.
여기서 잠시 내 공적에 괜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가령 한 소녀의 윤기 도는 화사한 입술이 마침내 남자를 유혹하는 그 빛깔을 잃는다고 해도 살아 있는 한 그것은 입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그 가혹한 처사를 견디며 그래도 오랜 세월 살다 보면 단 한번, 그 입술을 바들바들 떨리게 할 어떤 좋은 일이 다시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 요컨대 결국은 스러져 없어질 그 그림을 다시 한 번 몸서리치게 한 최후의 방문자는 나였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전사가 그린 스러지기 직전의 빵>
그 대상이 그림이든 살아있는 한 여인이든 그래. 몸서리치게 읽어낼 방문자는 그가 처음이었는 지도 몰라. 주목받지 않을 관심받지 못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지... 공들여 보존할만하지 못한 많은 생들이, 어디 구석배기 언저리에서 살아있는 동안 그 생명 소모하며 숨쉬고 때가 되면 바스라지고 말겠지.
...
인도의 기후가 그들의 건전함을 뒷받침하는 한 요소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많은 인도인들은 인간을 구제 불능의 생물이라고 여기고 있고, 자신들이 그런 생물이라는 걸 알고있으며, 그래서 각오하고 느긋하게 인간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배반하고 잇다. 그러나 그들은 약아빠져서 스스로 배반한 자신의 육체에 대해 또한 꿈을 걸고 있다. 자신의 육체가 내세에 개화하리라고 한없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일군의 화려한 인도 백성들은 꿈을 꾼다는 하나의 행위로 부터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그 육체가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해도 돼지도 아니고 개도 아니다. 간혹 그들의 인간 유지 방식이 다소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어보이더라도 그것에 의해 분명하게 하나의 인간을 유지하고 있는 한, 결국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일이 아니다.
...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과 인간의 위대함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도인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는 인간이 더 강인하고 오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맨발의 인도인과의 대화>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가령 사용법을 몰라 내다 버린 전기세탁기부터 아직 전기가 없던 시대에 죽은 수만의 인간 뼈까지...... 도무지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그리고 강바닥에서는 수만의 죽은 자의 뼈가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하면, 강 표면에는 1910년대에 처음 물에 띄워진 낡아빠진 고물선이 1972년 현재에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꿈실, 꿈실, 꿈실, 꿈실 실어 나르고 있다.
그리고 이 인간들도 가령 1999년경이면 갠지스의 강바닥에서 달가닥 덜거덕 뼈 부딪히는 소리와 더불어 꿈실, 꿈실, 꿈실, 꿈실 바다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갠지스는...... 가령 2001년이 되어 어디 먼 나라에서 흰 까마귀가 새카만 사람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역시 흐르고 이을 것이다.
<화장>
<<후지와라 신야, 아메라카 기행>>
노부인과의 대화
맥락없는 착상
소멸한 타자와 자기와의 경계
기억 상실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과거에 대한 향수
이익에도 손실에도 이어지지 않는 진전없는 공전
생각해보면 일주일간 누군가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걸어온 적이 없다.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냈다면 여기서는 한 달, 아니 일 년, 또는 자칫하면 평생토록 타자와 대화르 나누지 않고 인생을 보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표현되어도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의 유구하고도 정밀한 경치속에는 여기적 그와 같은 여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한 번씩 알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제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여행 도중 머릿속이 공백에 빠지는 일이 자주있었다.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불과 사흘 전, 아니 당장 오늘 아침에 내가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걸었는지 같은 단순한 경험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동양 여행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 땅에서는 오늘 본 것과 결험들이 쐐기처럼 내 기억에 박혀 날이 갈수록 뚜렷해졌을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서서히 발효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정리하려고 했을 때 다시금 향기로운 감로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일상은 정반대였다. 금세 지워지기 일쑤었따.
미국에서의 일상은 망막에 새겨진 이미지가 전부였다. 뇌의 시상하부에 닿기도 전에 환영처럼 사라졌다. 캘리포니아의 새파란 하늘 아래서 콜라를 마셨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거품은 식도를 지나는 찰나에만 약간의 자극을 남기고 사라진다. ...전에 왔던 거리를 내가 또 찾아온 게 아닐까.
여행자의 머릿속에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는 첫 번 째 요인은 획일성
의식주를 지배하고 있는 고잉된 인공조작. 외식산업. 투바이포 건축물. 슈퍼마켓의 대량생산품목. 사람들의 사고와 육체는 대량소비를 목표로 하는 아메리카 기능주의의 산물이었다. 무표정하고 실재감이 희박한 인공의 거리. 도로와 주택. 테이블, 컵, 스푼
나는 미국인의 기능주의 속을 여행한 것이었다.
... 이 희박한 현실 속에서 여행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지혜가 필요했다. 여행자는 오늘 있었던 여행의 알리바이를 작성하느라 매일 저녁 한 시간을 소모했다. 그러나 어느 거리의 어떤 레스토라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는지, 방금 전에 겪었던 일들마저도 머릿속에서 하얗게 증발해버리기 일쑤였다.
쾌할하고 고독하다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미국인의 보편적인 성격은 희박한 자기존재감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시공간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 과거, 즉 흘러간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이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된다. 가볍고 밝은 세계. 하지만 이 밝음은 나라는 존재와 과거를 버린 결과였다. 그들의 등에 달라 붙은 고독과 불안이야말로 밝음과 쾌활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증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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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는 싸우는 자에서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진 자가 되었다. 그리고 꽃의 기억, 전투의 기억, 동물의 기억, 여자의 기억, 본 적도 없는 강의 기억, 왕의 기억, 악사, 풀, 새, 구름, 태양 같은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마침내 이 예전의 살인자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그 어떤 신의 조재를 질퍽한 진흙 물감 속에 녹여 넣는 방법을 배웠다.
그가 전사에서 예수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왜냐하면 인도에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예술가라는 신분이 분명치 않은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피리 소리를 내더라도 그는 악사이고, 아무리 고운 빛깔을 빚어내더라도 그는 화공이라는 직업인다. 한 인도인이 오십 년 전에 말했듯이, "인도에서 '예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민족 체험의 표현이며 생활의 목적에 닿는 것, 요컨대 일상의 빵 같은 것이다."
태양은 아련한 백색 섬광이 되고, 사물의 글미자는 지표에서 유리된 것 처럼 서서히 그 능선을 지워가는 곳.
태양, 모래 먼지 속, 유백색의 밤 아래 전사의 긍지를 앗아가고도 남을 굴욕을 감수하고 그림그리는 자가 된 사람... 그는 누구인가. 결국 한 명의 사라남은 라지푸트족 전사랄 수밖에
서툴지만 소박하고 좋은 그림이었다. 이름 없는 자만이 그릴 수 있는, 붓을 쥔 손의 애처로움이 전해지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더불어 그 손의 흔적이 보여주는 옛사람의 인격도 우리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풍경 속에서 유한한 생명을 소모하며 숨 쉬고 있는 무명의 그림은 좋다.
과학자와 고고학자와 미술 연구가와 정치가는 함께 지혜를 짜내어 그림을 보존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인간의 횡포다. 있어야 할 장소의 고기를 쐬다가 마침내 때가 되어 그림 속 여자의 배꼽 언저리에 붙은 안료가 쪼글쪼글해지고, 말려 올라가고, 그러다가 벗겨져 맥없이 툭 떨어지는 것을 가슴 철렁하면서 보고있으면 된다.
여기서 잠시 내 공적에 괜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가령 한 소녀의 윤기 도는 화사한 입술이 마침내 남자를 유혹하는 그 빛깔을 잃는다고 해도 살아 있는 한 그것은 입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그 가혹한 처사를 견디며 그래도 오랜 세월 살다 보면 단 한번, 그 입술을 바들바들 떨리게 할 어떤 좋은 일이 다시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 요컨대 결국은 스러져 없어질 그 그림을 다시 한 번 몸서리치게 한 최후의 방문자는 나였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전사가 그린 스러지기 직전의 빵>
그 대상이 그림이든 살아있는 한 여인이든 그래. 몸서리치게 읽어낼 방문자는 그가 처음이었는 지도 몰라. 주목받지 않을 관심받지 못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지... 공들여 보존할만하지 못한 많은 생들이, 어디 구석배기 언저리에서 살아있는 동안 그 생명 소모하며 숨쉬고 때가 되면 바스라지고 말겠지.
...
인도의 기후가 그들의 건전함을 뒷받침하는 한 요소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많은 인도인들은 인간을 구제 불능의 생물이라고 여기고 있고, 자신들이 그런 생물이라는 걸 알고있으며, 그래서 각오하고 느긋하게 인간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배반하고 잇다. 그러나 그들은 약아빠져서 스스로 배반한 자신의 육체에 대해 또한 꿈을 걸고 있다. 자신의 육체가 내세에 개화하리라고 한없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일군의 화려한 인도 백성들은 꿈을 꾼다는 하나의 행위로 부터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그 육체가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해도 돼지도 아니고 개도 아니다. 간혹 그들의 인간 유지 방식이 다소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어보이더라도 그것에 의해 분명하게 하나의 인간을 유지하고 있는 한, 결국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일이 아니다.
...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과 인간의 위대함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도인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는 인간이 더 강인하고 오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맨발의 인도인과의 대화>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가령 사용법을 몰라 내다 버린 전기세탁기부터 아직 전기가 없던 시대에 죽은 수만의 인간 뼈까지...... 도무지 갠지스에 흐르지 않는 것이란 없다.
그리고 강바닥에서는 수만의 죽은 자의 뼈가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꿈실꿈실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하면, 강 표면에는 1910년대에 처음 물에 띄워진 낡아빠진 고물선이 1972년 현재에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꿈실, 꿈실, 꿈실, 꿈실 실어 나르고 있다.
그리고 이 인간들도 가령 1999년경이면 갠지스의 강바닥에서 달가닥 덜거덕 뼈 부딪히는 소리와 더불어 꿈실, 꿈실, 꿈실, 꿈실 바다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갠지스는...... 가령 2001년이 되어 어디 먼 나라에서 흰 까마귀가 새카만 사람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역시 흐르고 이을 것이다.
<화장>
<<후지와라 신야, 아메라카 기행>>
노부인과의 대화
맥락없는 착상
소멸한 타자와 자기와의 경계
기억 상실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과거에 대한 향수
이익에도 손실에도 이어지지 않는 진전없는 공전
생각해보면 일주일간 누군가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걸어온 적이 없다.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냈다면 여기서는 한 달, 아니 일 년, 또는 자칫하면 평생토록 타자와 대화르 나누지 않고 인생을 보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표현되어도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의 유구하고도 정밀한 경치속에는 여기적 그와 같은 여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한 번씩 알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제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여행 도중 머릿속이 공백에 빠지는 일이 자주있었다.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불과 사흘 전, 아니 당장 오늘 아침에 내가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걸었는지 같은 단순한 경험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동양 여행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 땅에서는 오늘 본 것과 결험들이 쐐기처럼 내 기억에 박혀 날이 갈수록 뚜렷해졌을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서서히 발효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정리하려고 했을 때 다시금 향기로운 감로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일상은 정반대였다. 금세 지워지기 일쑤었따.
미국에서의 일상은 망막에 새겨진 이미지가 전부였다. 뇌의 시상하부에 닿기도 전에 환영처럼 사라졌다. 캘리포니아의 새파란 하늘 아래서 콜라를 마셨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거품은 식도를 지나는 찰나에만 약간의 자극을 남기고 사라진다. ...전에 왔던 거리를 내가 또 찾아온 게 아닐까.
여행자의 머릿속에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는 첫 번 째 요인은 획일성
의식주를 지배하고 있는 고잉된 인공조작. 외식산업. 투바이포 건축물. 슈퍼마켓의 대량생산품목. 사람들의 사고와 육체는 대량소비를 목표로 하는 아메리카 기능주의의 산물이었다. 무표정하고 실재감이 희박한 인공의 거리. 도로와 주택. 테이블, 컵, 스푼
나는 미국인의 기능주의 속을 여행한 것이었다.
... 이 희박한 현실 속에서 여행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지혜가 필요했다. 여행자는 오늘 있었던 여행의 알리바이를 작성하느라 매일 저녁 한 시간을 소모했다. 그러나 어느 거리의 어떤 레스토라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는지, 방금 전에 겪었던 일들마저도 머릿속에서 하얗게 증발해버리기 일쑤였다.
쾌할하고 고독하다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미국인의 보편적인 성격은 희박한 자기존재감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시공간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 과거, 즉 흘러간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이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된다. 가볍고 밝은 세계. 하지만 이 밝음은 나라는 존재와 과거를 버린 결과였다. 그들의 등에 달라 붙은 고독과 불안이야말로 밝음과 쾌활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증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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