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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 인터뷰집

저는 중국 황제에 대한 영화보다 자신의 개를 산책시키는 한 사내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죠.

저는 주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요. 야망 따위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정상을 향해 오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주 작은 것들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 말이에요. ...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받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닫지 못해요. 결국 너무 늦은 후에야 그걸 깨닫지만 더이상 말할 기회는 남아있지 않죠. (천국보다 낯선) 저는 물론 각각의 캐릭터에서 제 모습을 발견해요. 하지만 이 작품이 특별히 자전적인 영화는 아니예요.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는, 작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한 애정. 가장 단순한 것들이 가장 소중하게 늦겨지죠. 예를 들어 대화라든가, 누군가와의 산책, 또는 구름 한 점이 지나가는 방식, 나무 이파리들에 떨어지는 빛, 또는 누군가와 함께 답배를 피우는 일. 이러한 것들이 온갖 유식한 잡동사니 헛소리들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어요. 일면 냉소적이라고 할 수 있죠. 저 자신을 허무주의자라고까지 부를 생각은 없지만, 저에게 이 행성은 정말 파멸 상태예요. 참 슬픈 일이죠. 하지만 여전히 몇몇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해요. 아마도 100년 후에는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출지도 모를......
전 어떤 것들 사이의 순간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택시 안에 있는 사람보다는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흥미롭죠. 저는 늘 작고 평범한 것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작은 순간들. 삶에 대한 태도나 시각적 디테일이 색다른 세상을 창조해내고, 독트간 캐릭터들의 특이한 개성을 드러낸다. 신들 사이. 작고 부수적인 것들. 사내와 여자친구가 전화로 말다툼 하다 다음 장면에서 그 사내가 여자 집 앞에 있으면 그가 어떻게 그녀의 집에 왔는지 궁금해요.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한동안 다른 곳을 차로 돌다가 왔을까, 라디오를 들으면서 왔을까, 하는 것들 말이예요.

>로스앤젤레스를 지나치게 신화적인 곳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흥미롭습니다. 당신의 영화들이 바로 그 신화를 벗겨내는 데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에요. 캐릭터들의 본질적인 일상성을 드러내면서 말이요. /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한 것들이 가장 낯설죠. 많은 걸 야기시키고. 많은 선입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또다른 얘기고요. 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어요.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호텔보다 일상적인 장소... 이탈리아인들은 직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성적이에요. 이탈리아의 풍광 자체가, 특히나 토스카나는 상상력의 문을 열어줘요. 교황의 처소,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 왜 이탈리아에 있는지 쉽게 이해돼요.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기꺼이 믿을 법한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죠. 로베르토는 진정한 토스카나 사람이에요. 이탈리에에 사는 친구를 만나 소개를 받았고, 이미 존과 톰의 캐릭터를 쓰고 있었찌만 스토리가 없었을 때, 그를 보고 역할 하나를 맡기기로 마음먹고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모하기 시작...
저는 어리둥절해하는 상태를 좋아해요. 지난 석 달 동안 베를린에서 살았는데, 일부러 독일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았어요. 또 저는 일본을 즐겨 찾는데, 거리의 표지판조차 읽지 못하죠. 그러한 경험은 상상력의 문을 열어줘요. 이런저런 것들을 그릇된 방식으로 해석하게 하죠. 말핮면 제 상상력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거예요. 15년 전쯤 파리에서 잠깐 살 때 어느 미국 청년과 아파트를 같이 쓴 일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저보다도 프랑스어가 서툴렀죠. 저는 그 친구에게 말라르메의 시들을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가 옮긴 시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물론 전부 틀리게 번역을 했죠. 나무를 나룻배로 추측하고 뭐 그런 식으로요.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번역하는 행위에는 상당히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리고 우린 프랑스어로 쓰인 성경의 몇 챕터를 읽었죠. 정말 근사했어요. 쓰인 내용의 절반 정도를 스스로 상상해야만 해죠. 저는 어떤 문화를 내가 오역하고 있는게 아닐까, 확신하지 못하고 있을 때의 그 심리 상태를 좋아해요. 그 문화의 기반이 되는 언어를 모르는 경우 말이에요.
전 낯선 장소에 툭 던져지는 걸 좋아해요. 어디서든 잠을 잘 자죠. 특히 좋아하는 건 이른 밤 시간에 바닥에 드러눕는 거예요. 장소가 어디든 닥 30분 정도 그렇게 누워서 제가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음악을 듣는 것처럼요. 아주 멀리서,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여러 소리가 들려오죠. 때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도 하고요. 그건 정말 아름답죠. 아주 좋아해요.
Life sucks
여행.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장소와 문화로의 여행. 친굿하지 않은 요소들.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뭔가를 예상할 수 없는 장소에 가 있는 것.

저는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나름대로 영화에 빠져들게 되죠. 언어라는 건 우리가 소통을 하기 위해 쓰는 하나의 부호예요. 하지만 그 부호 체계 안에서조차 우리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의 고저나 억양을 통해 그의 정서적 상태를 말할 수 있죠. 
존케이지의 nothing에 대한 강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얘기할 테고, 오늘 내 강연의 주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내 얘기를 들어도 우리는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이죠. 잠을 자고 싶은 사람이 잇따면 눈치 볼 것 없어요. 왜냐하면 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잇을 테니까요. 자를 뜨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우리는 여전히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 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테닊요." 무척 나른하게 최면을 거는 듯하면서도 상당히 아름답죠.  
작업을 하면서 언어라는 게 그저 우리가 사용하는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사람들은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내요. 흥미로운 일이죠.

저는 다른 어느 예술가들보다 시인을 존경해요. 그들의 작품은 번역할 수가 없죠. 그 작품들은 전적으로 그 문화와 언어의 특성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시는 무척 추상적이고, 무척 부족적이에요. 오직 시인의 부족 구성원들만이 그 언어의 음악을 음미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이나 무성영화는 반대요. 그것은 만국 공통적이예요. 어떤 면에서 보면 그게 더 높은 수준의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는 번역할 수 없기에 시인들을 가장 존경해요. 언어의 문제들이 이 행성을 그토록 아름답고 낯설게 만들죠. 우린 모두 같은 행성에 살지만 누구하고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어요. 이러한 부분은 역사를 관통하며 몇몇 이데올로기적 해결책들이 제시됐지만 사실상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슬픈 사실의 이유이기도 해요.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경우처럼 말이에요. 그저 이론적으로는 작동을 햇죠. 나름대로 전 지구적 규모로요. 하지만 우리가 가진 그 부족적 느낌에서 인간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요. 저에게 언어의 문제들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무언가를 의미해요. 언어의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들을 다르게 생가해요. 저는 바로 그 점이 모든 것들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문학적 형식을 너무 좋아한 데서 온 것 같아요. 시는 아름다운 형식이죠. 시 형식에서는 페이지의 빈 공간 또한 중요한 부분이에요. 테긋트가 어디에 자리하느냐도 마찬가지고요. 마치 마일스 데이미스가 연주를 멈추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 애절함 같은 거죠. 저는 문학, 그리고 음악적 구조의 형식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왜 그렇게 되엇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그 당시 저는 형식적으로 아주 순수한 영화에서도 영감을 받곤 했어요. 칼 드레이어라든가 브레송의 영화에서요. 그러한 것들이 제 마음을 움직였죠. 특히 그때는 MTV가 막 출범할 무렵이었는데, 이미지들을 정신없이 쏟아내는 그 스타일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꼈어요. 영화가 광고를 모방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고요. 당시의 제 영화미학과는 차이가 있었죠.
Life is far too important to be taken seriously. Oscar Wilde.

제게 시는 무척 힘 있고 아름다운 형식이에요. 또한 많은 언어상의 혁신은 시에서 오죠. ... 시인들은 늘 앞서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언어에 대한 감각, 그들의 비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죠. 언어는 추상화되고, 시의 형식 속에서 무척 아름다운 부호로 사용될 수 있어요. 여러 뉘앙스로, 다양한 의미로 변주될 수 있죠. 그 안에 음악이 담겨 있기도 하고요. 또한 산문에서 축소된 것이기 때문에 수학적이면서도 아주 추상적이에요. 많은 시인들이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의 가장자리에서 살았어요. 결코 돈을 벌기 위해 시를 쓰지 않았죠. 윌리엄 블레이크의 경우 오직 그의 첫 시집만이 정식으로 출간되엇어요. 그 이후에는 평생 자비로 출간을 했고요. 살아생전에는 누구도 그의 시에 제대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많은 시인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죠. 저는 시인들을, 뭐랄까,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선각자들이라고 생각해요. 모르겟어요. 저는 시가 좋아요. 누가 뭐래도 시가 좋아요. 그렇다고 해서 저한테 뭐 시비 걸 분 계신가요?

>자신에게 일종의 정치적 역할이 있다고 느끼세요? / 전 아주 강한 정치적 견해들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 작품이 공공연한 정치적 표현의 장이라고 여기진 않아요. 사실, 모든 게 정치적이죠. 그런데 제가 진정 경멸하는 건 바로 '우리 주위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영화들이에요. 그러니까...... 자본주의, 인종 차별, 탐욕, 성공이란 개념, 기독교, 소비자 단위로 여겨지는 가족 등등이 (세상이 워낙 그런것이고) 그런 세상의 일부일 분이라고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관객들이 수동적으로 믿게끔 하는 영화들 말이에요. 이런 영화들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와 동시에, 제가 정치적으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영화, 예술 작품은 질문을 던지고, 또 관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들이예요. 적어도 제 영화는 자신을 의식적으로 좀비같은 주류의 외부에 있게 하려는 캐릭터들을 다루고 있죠... 사람들은 제 영화가 낙천적이라고 말하지만 제 안에는 아마도 미국인이기 때문에 갖게 되었을 아주 극도의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잇어요. 미국은 모든 걸 대상화해서 시장에 내놓죠. 또한 탐욕과 이윤의 대명사죠. 저는 자리를 빼앗기고 주변부를 맴도는 캐릭터들에 대한 영화, 그리고 그들이 일견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을 행하는 영화를 통해 그러한 것들에 반기를 드는 거예요.

사람들은 만들 수 잇는 이야깃거리가 수적으로 제한되어있다고 말하죠. 그리고 이미 다 이야기했다고도 하고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그 말에 동의해요. 세상엔 수십억 명의 사람ㄷ르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몇몇 제한된 수의 플롯 카테고리에 들어맞죠. 하지만 저를 매료시키는 건, 각각의 모든 사람들이 지닌 삶에 대한 시각이 독자적이고,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다르다는 점이에요.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인식과 상황의 그러한 작은 차이점들이죠. 그게 제가 발자크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러한 차이점들이, 그리고 그 모호한 경계점들이,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저를 가장 유쾌하게 자극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슬프게도, 역설적으로, 그러한 차이점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정희하면서도, 세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막을지도 모르죠. (162)

<데드 맨>의 경우, 저는 인디언 캐릭터를 이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첫번째는 제거되어야만 한느 야만인, 또는 산업적 발전을 가로막는 자연력. 두번째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고귀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 이것 역시 또다른 클리셰죠. 전 그를 복잡 다난한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저는 미국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야망 같은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천국보다 낯선의 캐릭터들은 이렇다 할 야망을 품고 있지도 않고, 지적인 캐릭터들도 아니죠. 그러니까 이 작품은 실존주의 영화도 아니에요.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도 묻지 않아요. 그 대신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이죠. 되는대로, 별다른 목표 없이 영화 속 세상을 이리저리 옮겨다녀요. 그저 어디서 카드게임이나 새로 한판 벌여볼까 하는 기분으로요.

토착 문화에도 상당히 관심이 많죠. 그것들은 철학이나 다름없어요.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도외시 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있는 듯해요. 그렇게 다르 문화로부터 받아들인 무언가는 마음속, 영혼 안으로 스며들어 자신의 일부가 돼요. 저 또한 그것들이, 내 마음을 움직인 그것들이 제 안으로 들어오길 바라죠. 그것들로부터 배우고 싶고, 어떤 식으로든 제 삶 속에 편입되게 하고 싶어요.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제 작품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거고요. 다시말하자면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런 그런지 분석하진 않아요. 그저 그렇게 스며드는 것에 흡족할 뿐이죠. (387)

과정 - 캐릭터,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느낌의 배우가 등장할지 대략 그림을 그리고 분위기, 배우들과 관련된 디테일 모으기 시작, 덜 구체적인 아이디어에서 하나 하나 연결.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 구상으로 한 일년, 거기서 떠오르는 스토리 빨리 써내려가고 캐릭터들이 하는 얘기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적으며 쉽게 대사 쓴다. 배우들과 리허설 하면서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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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주관적이지. 상상력을 발휘하게. 인생은 한줌 흙인 것을. 우주는 중심도 주변도 없지. 모든 건 자의적인거야.

The limits of control


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