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출처를 잃어버린 인용을 좋아해
단단한 성벽에서 떨어진 회색 벽돌을 좋아해
매운 생강과자를 좋아해
헐어가는 입과 커다란 발을
끊어져 흔들리는 철교의
빨갛게 녹슬어가는 발목 아래서나
썩어가는 두엄지붕들 위에서
저 멀리
평원에서
들소의 젖은 털 사이로 불어오는
달착지근하고 따스한 바람을
손가락으로 좋아해
아니라고 말하는 어려움을
모든 습작들을 좋아해
서툰 몸짓을
이사 가는 날을 좋아해
죽은 사람의 아무렇게나 놓인 발들의 고요를
그 위로 봉긋하게 솟은
공원묘지에 모여든 초록 유방들
산 자의 기침과 그가 빠는 절망의 젖꼭지를
좋아해
그러나 꿀과 눈이 섞이는 시간을
너의 얼굴에서, 목에서
허리에서
얼음 같은 파란색 흐르는 시간을 좋아해
우리가 타버린 재 속에
함께 굽는
마지막 청어의 탄 맛을
나는 여러 종류의 시를 쓰고 수많은 밤을 살고
세상의 모든 병을 앓고 싶은 사람
쓰고 싶다
착한 아이의 코코아 같이 따스한 밤
너무 낮게 날아와 발뒤꿈치를 뚫고 지나간 화살
어둡고 넓은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피
절름발이 어둠 속에서
세 개의 목발이 짓이기는 토끼풀 향기
계속되는 전투의 먼지
알려진 모든 것들의 끝
모든 완고한 것이 부서지는 순간
철제 캐비넷의 차가움에 뺨을 대어보는 것
아 여름인가 봐
나의 창문 옆으로
흰 머리카락 엉켜 붙은 부랑자의 이마
더러운 모직외투를 흠뻑 적시는 여름 소나기가 지나간다
펼쳐지지 않은 부채
고사리 무늬로 돌돌 말린
서로 다른 밤들, 서로 다른 시간의 주름에 대해서
(아프리오리한 시간과 공간은 없으니까)
그리고 허무―그것만이 우리의 공통감각이다?
붉은 열매를 다 따버린 소녀들의 웃음
영원히 헤어지기 전의 짧은 포옹
내가 시를 써주고 받은 사과 한 알에 대하여
굶어죽어 가는 사람이여
급한 대로 이거라도 드시오
가지고 싶다
감각 번역기
아니다, 아니다 사실은 감각의 외국어학습시간
(또는 자율학습 시간)
죽어가는 빨강
나보다 가난한 자들이 내려주는 축복의 비
최승자의 새 시집
아름다운 분열증
스르르
열리는 문이 아니라
불타버린 참나무 문짝과
찾을 길 없이 아주 멀리 폭풍에 날아간 지붕을 가진 집
바다의 파란 입술을 깊이 꿰어 들어올릴 낚시 갈고리가
창문마다 드리워진
그들이 내게 말해주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너는 낡은 사원들이 무너진 것에 대하여 눈물 흘리기를 그칠 것인가?
―어린아이는 원인과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확실함이란, 더욱이 문법적 확실함이란 없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감각의 떨리는 목젖?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감각이 모두 고장 나 미지에로 이르다… 모든 감각의 길고 드넓은 깊은 고장
주의할 점
혁명적 낭만주의의 생선가시 때문에 자주 웅변적인 목구멍이 되고 만다
캑캑!
혼자 어두운 골방에서
뻬쩨르부르그 저녁 광장의 인파 속에 선 듯 외치다니
(그러나 우스꽝스러움, 이 모든 촌스러움을 나는 온 몸으로 살아내는 수밖에…)
나는 원한다
얼어붙은 겨울 숲에서 시작된 놀이가
문득 오렌지 온실로 통하는 걸 알았을 때의 놀라움
길 위의 바위를 잠시 들어올리는 노래
바위가 힘껏 눌렀던 땅의 축축함을 가진…
이끼의 짙은 초록빛에 너는 손가락을 대어보겠지?
(곧 바위가 떨어진다)
내 소원은 죽는 거야 하고 조롱(鳥籠) 속의 무녀처럼 중얼거릴 때
나를 부르는 시의 목소리―어이, 젊은 시인!
그냥 재미있게 읽으시오
* * *
언제나 놀림거리가 될 만큼 심각하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문제, 문체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햄릿 공주처럼 어리석은 영혼의 양자택일
그러나 시의 커다랗고 단순한 발바닥이 증언할 테지
내가 짓밟아온 길들의 눌어붙은 흔적
한 마디로 표현할 길 없는 시간의 소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