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몹시 분다.
이름도 모르는 벌판에서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았다.
저 멀리 벌판 끝으로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들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반짝반짝 글썽인다.
여기는 어디일까.
나무는 생각하는 법도 모르면서
제목도 모르는 책 앞에서 턱을 괸다.
위층 어딘가에서
웅얼웅얼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익숙해질 거야.
살아서 잠드는 일에 대해
살아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
이름도 모르는 벌판의 낯선 태양과
살아서 마주치는 일에 대해.
바람이 몹시 분다.
바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두려움 없이 바람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아온 것처럼.
눈동자들은 벌판의 끝으로 굴러가 있고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반짝반짝 글썽인다.
황성희
'p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사르 바예호 (0) | 2012.07.11 |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0) | 2012.04.04 |
진은영, 그림 일기 (0) | 2012.03.18 |
좋은일들, 물속에서 (1) | 2012.03.16 |
심보선+김소연 <새> (0) | 2012.03.15 |
네루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0) | 2012.01.27 |
이근화 (0) | 2012.01.13 |
진은영, 혼자 아픈 날 (0) | 2012.01.12 |
이준규, 내 마당 (0) | 2012.01.12 |
진은영, 방랑자, 집시의 시간, 러브어페어 (0) | 2012.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