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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김혜순 김언희

젖이라는 이름의 좆

김민정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아, 난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이 지극한 공평, 이 아찔한 안도)

섹스를 나눈 뒤
등을 맞대고 잠든 우리
저마다의 심장을 향해 도넛처럼,
완전 도-우-넛처럼 잔뜩 오그라들 때
거기 침대 위에 큼지막하게 던져진
두 짝의 가슴이,
두 짝의 불알이.

어머 착해.




[강정의 나쁜 취향] 정남식·김민정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life/200505/h2005053021361767110.htm&ver=v002 




양수막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태아처럼.

자루에 갇힌 고양이처럼.
_『불쌍한 사랑기계』(문학과지성사 1997)의 자서




딸을 낳던 날의 기억 - 판소리 사설조로

거울을 열고 들어가니
거울 안에 어머니가 앉아 계시고
거울 열고 다시 들어가니
그 거울 안에 외할머니가 앉으셨고
외할머니 앉은 거울을 밀고 문턱을 넘으니
거울 안에 외증조할머니 웃고 계시고
외증조할머니 웃으시던 입술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니
그 거울 안에 나보다 젊으신 외고조할머니
돌아 앉으셨고
그 거울을 열고 들어가니
또 들어가니
또 다시 들어가니점점점 어두워지는 거울 속에 모든 웃대조 어머니들 앉으셨는데그 모든 어머니들 나를 향해엄마엄마 부르며 혹은 중얼거리며입을 오물거려 젖을 달라고 외치며 달겨드는데젖은 안 나오고 누군가 자꾸 창자에바람을 넣고내 배는 풍선보다더 커져서 바다 위로이리 둥실 저리 둥실 불리워 다니고거울 속은 넓고넓어지푸라기 하나 안 잡히고번개가 가끔 내 몸 속을 지나가고바닷속에 자맥질해 들어갈 때마다바다 밑 땅 위에선 모든 어머니들의신발이 한가로이 녹고 있는데청천벽력.정전. 암흑천지.순간 모든 거울들 내 앞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며깨어지며 한 어머니를 토해내니흰 옷 입은 사람 여럿이 장갑 낀 손으로거울 조각들을 치우며 피 묻고 눈 감은모든 내 어머니들의 어머니조그만 어머니를 들어올리며말하길 손가락이 열 개 달린 공주요!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문학과지성사 1985)







슬픈 서커스

그녀는 의자 앞에 대걸레를 세운다
대걸레의 손잡이는 푸른 플라스틱 바께쓰에 담겨 있다
푸른 바께쓰는 물 찬 신발 같다
바께쓰의 검은 땟물이 대걸레의 손잡이를 감싼다

그녀는 화장실 옆 의자에 앉는다
의자에 앉아선 자신의 유니폼 푸른 재킷으로 걸레를 감싼다
조금 전까지도 바닥을 닦던 걸레의 머리털에선 땟국물이 줄줄 쏟아진다
그녀는 그 걸레의 머리털 위에 모자를 하나 씌운다
그녀는 웃으며 자신의 팔 하나를 떼어 걸레의 팔에 달아준다
시궁창에서 놀던 십 년 전 남동생을 안듯 그녀는 걸레를 안는다
마치 의자 위엔 그녀가 앉고
그녀의 무릎 위엔 한 남자가 안겨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대걸레 남자의 포켓에 손수건 하나 끼워준다
행복한 여자의 머리 위에서 손수건 꽃이 저절로 핀다

여자는 걸레를 안고 잠이 든다
걸레도 손을 들어 그녀의 꽃을 만져준다
그들은 너무 사랑하므로 포개어진 두 손은 하나처럼 보인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둘이 합해
그들은 팔이 두 개다

푸른 바께쓰 신발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이리 와요 아버지 내 음부를 하나 나눠드릴게 아니면 하나 만들어드릴까 아버지 정교한 수제품으로 아버지 웃으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첫날밤 침대 맡에는 일곱 어머니의 창자로 짠 화한이 붉디 푸르게 걸려 있잖아요 벗으세요 아버지 밀봉된 아버지 쇠가죽처럼 질겨빠진 아버지의 처녀막을 찢어드릴게 손잡이 달린 나의 성기로 아버지 아주 죽여드릴게 몇 번이고 아버지 깊숙이 손잡이까지 깊숙이 아버지 심장이 갈래갈래 터져버리는 황홀경을 아버지 절정을 아버지 비명의 레이스 비명의 프릴 비명의 란제리로 밤단장한 아버지 처년 척하는 아버지 그래봤자 아버진 갈보예요 사지를 버르적거리며 경련하는 아버지 좋으세요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뿌리째 파내드릴게

_김언희, 「가족극장, 이리 와요 아버지」 전문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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