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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한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뿐

이제 이룰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꺽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꺽어

네 꽃병에 꽃아다오







ㅡㅡ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http://audioboo.fm/boos/245385- 낭독 진은영)


승자의 노래, GQ0904이우성 http://blog.naver.com/kattaki/8006786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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