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우리는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지도, 그것에 속거나 공범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쉼표 하나를 위하여 죽게 되는 세상을 동경한다.
신념이 확고한 인간에게는 문체가 필요 없다.
인생에 실패하면 재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시의 세계에 접근하게 된다.
어떤 언어도 존재를 구속하지 않았던 시대로, 간결한 감탄사의 세계로, 정신이 몽롱한 천국 같은 상태로, 방언들이 나타나기 이전의 막막한 즐거움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깊이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신의 결점들 속에 푹 잠기기만 하면 된다.
비밀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그들보다 더 심오한 인간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단어이다.
‘재능’이란 모든 것을 왜곡하고, 사물을 뒤틀리게 하며, 자신을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미적 언어의 기만 : 평범한 슬픔을 기이하게 표현한다. 사소한 불행을 미화한다. 공허를 치장한다. 한숨 혹은 빈정거림을 미사여구로 꾸며서, 언어를 통해서 존재한다.
의심에 대한 갈증을 가라앉힐 길이 없다. 왜 내게는 바위에서 의심을 솟아나게 할 수 있는 모세의 지팡이가 없는 것일까?
우울증 발작과는 싸울 수 있지만, 내 것이면서 나를 앞질러가는 강박증과는 싸워볼 도리가 없다.
건강할 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간다. 그러나 병에 걸리면 내가 아니라 내 병이 결정을 내린다.
그는 자신의 적들을 사랑하면서 비웃었던 풍자가이다. 자신을 사랑하며 동시에 미워했던 그가 만일 자신의 비참함을 타인들에게 투사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복수를 타인들에게 한 것이다.
열정을 느끼는 대상이 막연한 것일수록 그 열정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내 열정의 대상은 권태다. 나는 그 막연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절망은 신앙이나 정치 혹은 동물적 본능에 영향을 받지만, 우울함은 어느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울함을 멈추게 하는 것은 우리의 피뿐이다.
피로감에는 형이상학적 효과가 있다고 나는 오랫동안 믿어왔다. 피곤할 때 우리는 시간의 뿌리까지 잠기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르든 늦든 욕망이 지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욕망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울함 - 그 게으른 자들의 등산
나는 서서 결심한다. 나는 눕는다. 그리고 그 결심을 취소한다.
가난 속에서 폭군의 심술을 키운다. 잔인한 본성을 억제하면서 숨이 막힌다.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하인이 없고 공포에 떨게 만들 제국이 없으므로 자신을 증오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자극하지 않을 때, 마지막 자극제인 ‘울적함’이 있다.
내가 한 번도 속은 적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동시에 증오하면서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존엄성이란 흥분의 순간이 지나고 남아 있는 허탈한 애정에서 오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도 어떤 제도에도 책임이 없는 집시들은 진정으로 선택된 백성이다. 그들은 이 땅 위에 아무것도 이룩하지 않겠다는 배려를 통해서 이 세상을 제압하고 있다.
우리의 꿈속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정신병자가 뚫고 나온다. 그 정신병자는 우리의 밤 시간을 지배하고 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잠을 잔다.
신념이 확고한 인간에게는 문체가 필요 없다.
인생에 실패하면 재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시의 세계에 접근하게 된다.
어떤 언어도 존재를 구속하지 않았던 시대로, 간결한 감탄사의 세계로, 정신이 몽롱한 천국 같은 상태로, 방언들이 나타나기 이전의 막막한 즐거움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깊이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신의 결점들 속에 푹 잠기기만 하면 된다.
비밀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그들보다 더 심오한 인간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단어이다.
‘재능’이란 모든 것을 왜곡하고, 사물을 뒤틀리게 하며, 자신을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미적 언어의 기만 : 평범한 슬픔을 기이하게 표현한다. 사소한 불행을 미화한다. 공허를 치장한다. 한숨 혹은 빈정거림을 미사여구로 꾸며서, 언어를 통해서 존재한다.
의심에 대한 갈증을 가라앉힐 길이 없다. 왜 내게는 바위에서 의심을 솟아나게 할 수 있는 모세의 지팡이가 없는 것일까?
우울증 발작과는 싸울 수 있지만, 내 것이면서 나를 앞질러가는 강박증과는 싸워볼 도리가 없다.
건강할 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간다. 그러나 병에 걸리면 내가 아니라 내 병이 결정을 내린다.
그는 자신의 적들을 사랑하면서 비웃었던 풍자가이다. 자신을 사랑하며 동시에 미워했던 그가 만일 자신의 비참함을 타인들에게 투사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복수를 타인들에게 한 것이다.
열정을 느끼는 대상이 막연한 것일수록 그 열정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내 열정의 대상은 권태다. 나는 그 막연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절망은 신앙이나 정치 혹은 동물적 본능에 영향을 받지만, 우울함은 어느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울함을 멈추게 하는 것은 우리의 피뿐이다.
피로감에는 형이상학적 효과가 있다고 나는 오랫동안 믿어왔다. 피곤할 때 우리는 시간의 뿌리까지 잠기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르든 늦든 욕망이 지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욕망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울함 - 그 게으른 자들의 등산
나는 서서 결심한다. 나는 눕는다. 그리고 그 결심을 취소한다.
가난 속에서 폭군의 심술을 키운다. 잔인한 본성을 억제하면서 숨이 막힌다.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하인이 없고 공포에 떨게 만들 제국이 없으므로 자신을 증오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자극하지 않을 때, 마지막 자극제인 ‘울적함’이 있다.
내가 한 번도 속은 적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동시에 증오하면서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존엄성이란 흥분의 순간이 지나고 남아 있는 허탈한 애정에서 오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도 어떤 제도에도 책임이 없는 집시들은 진정으로 선택된 백성이다. 그들은 이 땅 위에 아무것도 이룩하지 않겠다는 배려를 통해서 이 세상을 제압하고 있다.
우리의 꿈속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정신병자가 뚫고 나온다. 그 정신병자는 우리의 밤 시간을 지배하고 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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