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p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보선, 나라는 말 (0) | 2013.02.08 |
---|---|
최승자, 길이 없어 (0) | 2013.01.20 |
오정국,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0) | 2012.12.25 |
프레베르, 엘리칸테 (0) | 2012.12.22 |
최정례, 붉은밭 (0) | 2012.12.14 |
기형도, 도시의 눈 - 겨울 판화(版畵) 2 (0) | 2012.09.28 |
심보선, 도시적 고독에 관한 가설 (0) | 2012.09.03 |
별과 시 (0) | 2012.08.27 |
김행숙, 옆에 대하여 (0) | 2012.07.22 |
오탁번 (0) | 2012.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