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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명절때 한국의 고속도로는 모세가 군중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를 담은 '엑소더스(Exodus.출애급기)'에 자주 비견된다.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고향을 찾을까. 도대체 어떤힘이 사람들을 고향으로 가게 하는가.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산문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이레출판펴냄)에 보면 이같은 의문의 답을 얻을 수 있다.

헤세에게 우선 고향은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남부독일 슈바벤 지방의 작은 마을 칼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30년전 칼브의 수많은 사람들을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개나 고양이도 없었다. 다리 위로 달려가는 마차를 보면 나는 그것이 누구의 소유인지 다 알 수 있었다. 학교친구들의 별명이 무엇인지 일일이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빵집들을 알고 있었고, 그 안에 어떤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지도 다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어디 그뿐인가. 나는 이 마을안에 있는 나무들과 그 위에 사는 풍뎅이와 새들, 그둥지까지도 다 알고있었다. 수많은 정원어디에 딸기가 열리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무위에서 사는 새들과 풍뎅이까지 다 알고 있는 익숙함은 고향이 아닌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감상이다. 고향은 내 자신의 성장기와 동일시되기때문이다. 나의 기쁨이자 슬픔, 나의 스승이었던 곳이 바로 고향이다. 철들고 성장한 이후 만난 어느 곳도 '고향'이 되어줄수는 없다. 이미 나는 다 만들어졌기때문이다.

나무가 아무리 가지를 뻗어나가도 뿌리를 박은 그 자리에서 생명의 자양분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헤세의 말을 한 줄 더 옮겨보자

"많은 길을 나는 또다시 돌아서 갈 것이다. 수많은 것이 충족되겠지만 그것들은 나를 여전히 실망시킬 것이다."

많은 것을 충족시켜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망스러운 곳이 타향이고 많은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더라도 실망스럽지 않은 곳이 고향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의 한 귀절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바로 고향이고, 예쁘지도 않지만 '차마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곳'이 또 고향이다. 엑소더스면 어떠랴. 고향을 가는 길인데.

- 허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0192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