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아래 적힌 카뮈의 글을 읽는다. 책을 덮고 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혼잣말을 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해가 떴으면 좋겠어. 오늘 본 그 태양이 내일 다시 떠오르는 것임을 알고 있다. 벽에 걸린 시계가 내는 요란한 초침 소리가 쉼 없이 계속되리라는 것도. 하지만 기원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시간을 갈라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워지고 싶다고.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두꺼운 책 속에 굳게 잠긴 글자를 들여다 볼 때만 내가 세상 모든 ‘흔한 사람’과 다르다고 느꼈다. 자존이 찾아오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를 위안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세상에 하나뿐인 일몰을 갖고 싶었다. 해가 수평선으로 지기 전, 빛이 휘며 생기는 ‘녹색 광선(Le Rayon Vert)’을 보는 순간 삶의 진실이 드러나고 참된 사랑이 이뤄진다고 믿는 델핀느(마리 라비에르)를 알게 된 후부터. 유심히 하늘을 살폈지만 단 한 번도 녹색 광선을 본 적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도 버스의 창 너머로도 용기 내어 혼자 떠난 여행에서도. 대신 오렌지 빛 하늘 너머로 보라색 노을이 지는 풍광을 나의 일몰로 삼았다. 운이 좋은 날에만 볼 수 있는, 푸른 어둠처럼 흔치 않은 온전한 내 것. 그림자로 남은 사람의 등 너머로 한참동안 나만의 일몰을 바라보곤 했다.
다시 어두운 밤. 꿈을 꾼다. 태양을 마주하고 선 나는 태양을 등지고 선 사람을 볼 수 없다. 태양이 눈부시다. 아지랑이 피어나듯 주위가 흔들리더니 사라진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움켜쥔다. 탕, 미안해. 탕, 고마웠어. 탕, 안녕. 탕, (침묵).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에 나는 그림자를 쐈다. 살고 싶다고 말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사라진 그림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를 위해 해가 다시 빛났으면 좋겠어, 그럼 결국 나아질 텐데 (I hope the sun will shine again for me and I will make it in the end).’ -Kubb, Sun 중에서
변명은 잘못한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배려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았다.
태양이 없는 동안은 안심하고 꿈을 꿨다. 빛이 나를 찌르지도 않고 볕이 나를 벗길 수 없는 시간. 날이 밝으면 어떤 얼굴로 다정한 말을 하며 살아있는 몸짓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 숨어서는 마음껏 울고 하고픈 대로 소리치고 완전히 미쳐도 좋았다. 몸을 웅크린 채 그리움을 부둥켜안아도, 의자 위에 올라서 천장에 걸린 절망에 몸을 맡겨도 어김없이 눈을 떴고 아침이 시작됐다. 그게 더 고통스러웠다. 누군가 나에게 특별한 새벽을 고를 단 한 번의 기회를 준다면 망설이지 않고 시계를 돌릴 것이다. 밤새도록 길을 걸어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와 다아시(매튜 맥퍼딘)가 마주했던 해 뜨는 새벽으로.
축축한 풀숲을 헤치는 이슬 묻은 발목, 땅에 끌려 흙이 묻은 옷자락, 머리카락에 묻어나는 어둠, 부연 길을 밝혀주는 확고한 감정. 만남을 기약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향해 밤새 길을 걷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동이 트는 순간,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그림자가 아닌 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까, 나도. 가까이 다가서는 그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들을 비추는 태양의 빛은 찬란해진다.
문득 떠진 눈으로 시계를 흘긋 본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진다. 늘 그렇듯 ‘언젠가’를 마음에 품으며 손에 잡히는 따뜻한 빛 방울을 귀에 넣는다. 어제와 다름없는 태양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오늘만은. ‘태양이 비치는 섬에서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야(On an island in the sun We'll be playing and having fun) 생각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주체할 수가 없어(And it makes me feel so fine I can't control my brain) 황금빛 바닷가에서는 일상의 어떤 기억도 필요 없어(When you're on a golden sea You don't need no memory) 당신 것이라 할 수 있는 장소면 돼 우리가 그곳으로 가면 이젠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을 거야(Just a place to call your own As we drift into the zone We'll never feel bad anymore).’
-Weezer, ‘Island in the Sun’ 중에서
Copyright 대학내일(naeilshot.co.kr) 451호 안희진 학생리포터 l blue-adios@nate.com ㅣ 2009-01-04 (01:12:02)
+ 카뮈, 안과 겉 p110
<착란> 1931 10
단순한 행복과 위대함 사이의 신성한 차원에서 살고자하는 욕구와 인간의 차원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사이의 망설임.
진실에 대한 집착과 진실에 도달할 능력이 없음으로 해서 그냥 무심해지고 싶은 욕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
그리하여 결국은 모순과 그 모순에서 오는 괴로움을 삶의 현실 자체로서 받아들인다. 그 현실 속에서는 정신과 마음의 논리가 이 세계의 무질서와 다툰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충분한 반항이 아닌가?
로제 키요의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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