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어 그냥
박꽃처럼 웃고 있을 뿐,
답신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오지 않을 답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이는 것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응시할 뿐.
모든 일이 참을 만해요.
세포가 늙어 가나봐요.
가난하지만
이 방은 다정하군요.
흐르는 이 물길의 정다움,
물의 장례식이 떠나가고 있어요.
잊으시지요.
꿈꾸기 가장 편리한 나는
무덤 속의 나니까요.
ㅡ
작업실 건물에 나 밖에 없을 때가 많다.
오늘은 일 없이 들러 있다 왔다.
돌아오는 길에 화단에서
이 추위에도 작고 단단한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를
꺾어 가려 했는데
갈대처럼 질겨서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적어보려 하고, 느끼고, 감탄했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맥주와 치즈를 사려고 슈퍼에 들렀다가
두부 한모를 사와서
설거지 빨래 분리수거 끝내고
익은 김치와 먹었다.
갓 담궜을 땐 중국산보다 맛없던 게
아주 잘 익었다.
옛날에 할머니랑 낮잠자다가
두부장수 트럭 소리가 들리면
그 뜨끈한 네모 두부 한 모 사다가
김치로 싸먹었다.
할매랑
두부 먹고
콩나물도 다듬고
호박 반지 끼고
진분홍 립스틱바르고
때지난 달력 뜯어다가
그 뒷면에
싸인펜으로
꽃이랑 공주님이랑 그리고 싶어요.
나중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거 이렇게 중얼중얼 적다보니
지금 그리는 80f 어떻게 완성시킬지
길이 좀 보이는 것 같다.
박꽃처럼 웃고 있을 뿐,
답신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오지 않을 답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이는 것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응시할 뿐.
모든 일이 참을 만해요.
세포가 늙어 가나봐요.
가난하지만
이 방은 다정하군요.
흐르는 이 물길의 정다움,
물의 장례식이 떠나가고 있어요.
잊으시지요.
꿈꾸기 가장 편리한 나는
무덤 속의 나니까요.
ㅡ
작업실 건물에 나 밖에 없을 때가 많다.
오늘은 일 없이 들러 있다 왔다.
돌아오는 길에 화단에서
이 추위에도 작고 단단한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를
꺾어 가려 했는데
갈대처럼 질겨서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적어보려 하고, 느끼고, 감탄했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맥주와 치즈를 사려고 슈퍼에 들렀다가
두부 한모를 사와서
설거지 빨래 분리수거 끝내고
익은 김치와 먹었다.
갓 담궜을 땐 중국산보다 맛없던 게
아주 잘 익었다.
옛날에 할머니랑 낮잠자다가
두부장수 트럭 소리가 들리면
그 뜨끈한 네모 두부 한 모 사다가
김치로 싸먹었다.
할매랑
두부 먹고
콩나물도 다듬고
호박 반지 끼고
진분홍 립스틱바르고
때지난 달력 뜯어다가
그 뒷면에
싸인펜으로
꽃이랑 공주님이랑 그리고 싶어요.
나중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거 이렇게 중얼중얼 적다보니
지금 그리는 80f 어떻게 완성시킬지
길이 좀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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