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A.호프만, 모래사나이, 문지 104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력이 우리가 그저 일반적이고 단순한 삶의 경험으로 치부하면서 미처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많은 비밀들을 해명해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중하게 작업을 해야겠지요. 외적 혹은 내적인 그 어떤 동기 부여도 없이 우리의 관념의 고리를 끊고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의 정확한 모습이 아주 생생하게, 우리 자신이 놀랄 정도로 우리의 전 자아를 지배하며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지요. 정말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따금 꿈속에서 마주치는 것이에요. 모든 꿈의 장면이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고 그 장면들과는 완전히 무관한 새로운 꿈에서 생명력으로 가득찬 어떤 장면이 나타나서는 우리를 멀리 떨어진 장소로 옮겨놓고 오랫동안 생각지 않아 서먹서먹해진 사람들을 만나게 하죠. 그보다 더 이상한 일도 있어요!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 어쩌면 몇 년 후에나 알게 될 어떤 사람을 꿈에서 미리 보기도 하니까요. 맙소사, 저 사람을 아는 것 같아, 어디선가 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 떄가 있는데 그런 일이 전혀 없었을 때에는 어쩌면 꿈에서 본 모습에 대한 희미한 기억일지도 몰라요. 이렇게 갑자기 우리의 관념 연합 안으로 뛰어들어와, 곧 특별한 힘으로 사로잡곤 하는 이러한 낯선 모습들은 바로 어떤 알 수 없는 정신적 원리에 의해 유발된 것이 아닐까요?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아무 준비도 없이 자기력으로 우리의 정신에 작용을 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면 어떡하죠?"
그러자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어.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된 어리석은 시대의 마법이나 요술, 신기로, 그 밖의 어리석은 미신적인 환상으로부터 그다지 진보하지 못했다는 얘기군요."
의사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어.
"아, 어느 시대도 소멸된다고 할 수는 없어요. 더욱이 사람들이 생각할 능력을 갖고 있었떤 시대를 어리석었다고 치부해버리지 않는다면 어느 시대나, 우리 시대도 포함해서, 어리석은 시대는 없어요. 무엇인가를 곧장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심지어 법적으로 엄격히 증명되어 확정된 것까지도 부정하려 드는 것은 독선적인 짓이예요. 그리고 나는 우리의 정신의 고향인 비밀스런 어두운 왕국 안에서 우리의 어리석은 눈에 상당히 밝게 빛나는 단 하나의 램프가 불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이 우리에게 두더지의 능력이나 성향을 준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눈이 멀었어도 어두운 길 위에서 계속 나아가려고 시도하지요. ..."
...
"...나는 어떤 정신적인 원리의 절대적인 지배를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러한 지배력을 허용하는 상호 작용이나 의존, 내적 의지의 나약함 같은 것 떄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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