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그래도 나 그 맥주 네 병은 다 마셨다고. 담배는 다 못 피웠지만. 얘는, 그 얘기를 마저 들었어야지. 그 얘기 하려고 시작한 건데."
42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
80 무주 정민의 외할머니.
109 세계 백여 개 국가의 인사말과 입맞춤 소리, 고래 인사말, 아이 우는 소리 등이 녹음돼 있는 레코드판을 보이저 호에 시어서 보내자고 주장한 칼 세이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 금도금 레코드 판을 전축에 얹어서 들어보자고 주장할 외계 생명체는 또 다른 칼 세이건.
"밤마다 텅 빈 우주공간을 바라보며 우리만 살기에는 상당히 넓다고 생각해 본 사람만이, 그래서 어딘가에서 날아올지도 모를 신호를 기다리며 전파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본 존재만이 그 레코드판을 들어볼 생각을 할 거야. ... 우리는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과 연결되는 거야."
(나는 칼 세이건은 대학 1학년 때 만날 센트럴영풍문고에서 살 때 알았다. 코스모스라 하면 중학교 1학년 때 애들을 무지막지하게 패던 체육선생의 츄리닝 등짝에 cosmos라고 수놓아져 있던 게 기억난다. 학부모 항의로 다른 학교로 옮기고서도 또 쫓겨나고 그랬던 그 선생도 사랑을 했나.)
206
214
그날, 베르크 씨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푹 젖은 옷을 다 벗어던지고 곧장 침대로 들어갔다. 빗소리가 열어놓은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몰려왔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내가 원했던 여러 소망들이 기묘한 형태로 꿈속에 등장했다. 꿈속에서 나는 열어놓은 문틈으로 투쟁국장과 강철수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파티를 벌이는 소리를 들으며 벌거벗은 정민을 쓰다듬고 만지고 핥고 껴안았다. 정민의 몸에 입술을 부비며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으니까. 거기가 환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당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물라 나스루딘처럼. 찾아내는 순간,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무가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보물을. 찾아내는 순간, 나의 인생이 더없이 짧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인 그 보물을. 그리하며 내가 찾는 진정한 보물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줄 뿐이 그 보물을.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소망이 녹아들었음에도 그 꿈이 내게는 슬펐다. 그래서 요란스레 울리는 벨소리에 깨어났을 때는 우울함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226
수많은 고독과 번민을 지불하고 긤을 발견했다. 미대에 등록한 안젤라 아줌마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안젤라 아줌마는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인 동시에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314
1980년대식 사랑. ... 선천적으로 타고난 우울증, 강한 상대에게 품게 되는 열등감, 선한 사람이 마땅히 가지는 죄책감 등이 압도적인 폭력의 시기를 만나게 되면 때로 쉽게 납드갈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로서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일컬어 사랑이라고 말해야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감정들, 예를 들어 증오심이나 복수심, 혹은 공명심 등을 사랑으로 오인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므로 이 아무런 의지도 지니지 못하는, 폭력적 시대의 도구에 불과한 인간을 향해 우리가 지니는 연민의 감정은 절대로 사랑이랄 수 없었다. 그건 증오심과 복수심에 딸려나오는 여분의 감정일 뿐이었다. 아무리 베르크씨가 증오는 하나이고 사랑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이 사람만은 달랐다.
하지만 그날의 산책길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유쾌한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 다시 말하자면 연민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존재였다. 그의 삶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불행으로 가득했고, 그 대부분의 불행은 폭력적인 체제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그가 그 무엇에도 훼손되지 않는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것은 정민의 삼촌이,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가 한평생 꿈꿨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행복은 결코 환각이 아니었다. 실낱같기는 해도 그건 단 하나의 확실한 무엇이었다. ...
377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저녁이에요. 동쪽 하늘은 파랗고 거기로 별이 떠올라요. 하지만 서쪽을 보면, 아직 빛이 남아 있는 거죠. 밤이 깊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빛. 모든게 끝이 난다고 해도 인생은 조금더 계속되리라는 그런 느낌"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거야. 사라진 우리들을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
입체사진.
비디오.
...
고등학생 때 사모으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종종 환승에 환승에 환승에 환승을 하며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던 기분.
술기운에 졸면서 2호선을 한바퀴 돌고 있었던 기억.
까치산에서 신도림까지 수십번을 왔다갔다하며 피서했던 여름.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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