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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 코헨, 뮤지엄아워스

요한은 빈 미술사 박물관을 지키는 일을 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러다 지루하면 그림을 본다. 그림 보는 시간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몬트리올에 사는 앤은 사촌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주인인 친구에게 비행기삯을 빌린다. 어릴 땐 친했지만 못본지도 오래된 친척이다. 그런데 가족도 없는 그녀의 전화부 통해 병원에서 호출한 것이다. 긴 비행을 마친 앤은 처음 오게 된 낯선 도시에서 우선 바로 초록 코트를 입은 채 잠든다. 테이블과 침대로 꽉찬 단칸방이다.

 

어느날 요한은 며칠 전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던 앤을 기억하며 왜 어떤 사람들에 대해선 호기심이 생기는 건지 갸우뚱하다. 며칠 후 또 마주친 그녀가 지도를 들고 헤매며 병원이 어디있는지를 묻는다. 요한은 자신이 근무하는 요일을 알려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한다.

 

앤의 사촌은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같은 상태로 누워있다. 요한은 작은 조치를 취해주어 앤이 박물관에 편히 출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둘은 둘은 같이 병원에 가기도하고, 술집에 가기도 하고, 거리를 걷는다. 자신이 그녀의 입장이라면 마찬가지의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앤이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 곳들 위주로 데려간다. 구경을 시켜준다기 보다 계속 걷는다는 편이 맞겠다. 그렇게 요한은 자신이 옛날에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자주 가게 되지 않는 장소들을 새롭게 돌아다니게 된다.

 

 

 

영화 내내 비수기의 관광도시, 우경화한 젊은이들, 깊게 패인 주름, 버려진 사물들과 같이 시각적으로 가난과 노화, 그리고 죽음이 전면에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이 그것에 대한 감정을 토하는 장면은 없다. 회한도, 푸념도, 하소연도, 서러움도, 청승도 없다. 반대로 긴 삶에서 체득한 관록과 깊이가 보인다. 깊이란 문화적 교양과 품위를 뜻하지 않는다. '시선'을 뜻한다. 으레 통속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덤덤히 시간을 보내는, 능력이라고 까지 부를 수 있을 것같은, 자세.

 

요한의 집 안에서 보이는 오브제는 고작 게임 중인 노트북과 화장실 거울이고, 앤의 본가에서 보이는 오브제는 노란 커튼, 여관에는 싱글베드와 식탁 정도가 있다. 그들이 살고있는 간소하고 평범한 삶을 드러낸다. 다분히 의도적인 촬영이었다고 본다. 그들이 살아온 세월은 짧게 발화될 뿐 물화되어 진열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맺어온 인연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요한에겐 남자 파트너가 있었고, 앤에게는 발가벗고 있곤했던 남자친구도, 라큰롤을 좋아하던 딸아이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들은 대게 '캐내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요.' '제 얘기를 또해버렸네요.' '그랬어요. 뭐 그건 그렇고.'로 끝난다. 하지만 바깥에 보이는 풍경들을 통해 안을 보여준다. 방 안, 혹은 정신적 내면.

 

요한과 앤은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해 말한다. 요한은 박물관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의 행동들에 대해 계속 나레이션 한다. 뮤지엄아워스라는 제목 속의 주제의식을 계속 견인한다. 뮤지엄의 디렉터도 큐레이터도 아닌 그저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지킴이의 시선으로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영화는 지금의 미술관을 직시하게 되고, 미술작품 관람에 관해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만한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아이들은 대게 엽기적인 장면에만 곧잘 반응하며, 작품을 경쟁하듯 깎아내리는 데에서 재미를 본다던가, 요즘 인터넷에 야한 것들이 범람한다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어쩜 이렇게 고상하게 발기한 와상을 구경할 수 있겠냐던가, 관객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화장실이 어디예요이며, 어른아이 할 것없이 작품의 가치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말 등등.

 

앤 역시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해 말한다. 의사말로는 같은 상태라는 사촌에 대해 계속 달라지는 게 보인다고 말한다. 의사 말로는 듣지 못할 거라는 사촌에게 요한의 입을 통해 뮤지엄 얘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들려준다. 좁은 강줄기 옆으로 한 번에 날아가는 비둘기 떼를 보았다고 말한다.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로 된 건물(대공포호)을 보았다고 말한다. 빨간 외투를 입을 남자가 사진을 찍느라 가만히 있는 모습이 동상같아 보였다고 말한다. (관광객을 위한) 예쁜 마차를 보았다고 말하고 어느 건물의 벽에 헐린 옆건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어느 남자가 자신에게 와서, 영어도 독어도 아닌 말로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가만히 있었는데 그게 아름다워 보였고 뭔가가 생각날 듯 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 얘기를 할 때 뮤지엄에 걸린 그 남자를 닮은 초상이 겹쳐나와 관객들이 웃었다.) 상점 앞에 장대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대화의 장면에서 앤의 눈동자가 캣츠아이로 반짝거린다. 아, 애초에 앤은 친척이 혼수상태인데 박물관 부터 들러 볼 걸 보고, 나흘 후에나 병원이 어디있는지 찾았던 사람이다. 

 

 

 

뮤지엄아워스는 뮤지엄만큼이나 뮤지엄 바깥들을 비춘다. 관광지다운 비엔나가 아니라, 그저 그런 풍경들이 있다. 조각조각 메꿔진 아스팔트 길, 고층 빌딩, 건설현장, 잔가지가 무성한 커다란 나무들, 비둘기와 까마귀, 상점과 노점들, 취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시간만 여는 중고가게가 있고, 열쇠집이었던 붉은 커튼이 걸린 빈 상점이 있다. 빙판길을 걷는 맹인, 벽에 그려진 백곰, 굵은 나무에 요상하게 탱자 가시처럼 자라있는 가지, 매끄러운 표면을 반짝이는 기차가 있다. 

 

영화에는 주인공의 동선과 상관없이 계속 비엔나의 이곳 저곳을 비춘은 샷들이 끼어드는데, 이건 마치 보여주고 싶은 것들과 보고싶은 것들을 찾아 계속 방랑하는, 세번째 주인공이 실체없이 계속 공존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누구지. 누구의 눈일까. 감독 자신일 수도 있고, 촬영부에게 맡긴 무작위적인 숏들일 수 도 있다. 그 눈의 주인은 누구일까. 어느 쓸쓸한 화가일 것 같기도 했다. 몇몇 구도적으로 탁월한 샷들은 카메라로 그린 그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나무 위의 까마귀 그림 다음에 등장하는 까마귀를 찍은 장면은 풍경화 같았고 카드패, 계란 껍질이 그려진 그림 다음에 등장하는 길에 나뒹구는 종이, 짝없는 장갑 같은 장면은 정물화 같았다. 그리고 관람객이라는 초상들.

 

 

 

브뤼겔(Pieter Bruegel)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브뤼헐이라고 한단다. 원래 brughel인데 본인이 그림에 brugel이라고 표식하여 그렇게 불렀었나보다. 나는 브뤼겔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 브뤼겔이 나오는지는 전혀 몰랐던 건 고사하고, 이렇게 저명한 화가인지도 몰랐다. 반가운 동시에 공부가 됐고, 그림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으며, 그림과 금박프레임이 안 어울려 보여 거슬렸다.

 

브뤼겔의 그림엔 드넓은 풍경이 집약적으로 모여있어 구도적으로 흥미롭다. 또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엉켜 사는 풍속이 있어 좋아한다. 어린이 동화책에서 다양한 직업군을 한 장에 모아놓고 설명해 주는 구도 같기도 하고, 대하사극의 엑스트라들이 뒤엉켜있는 장면같기도 한데, 손수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긴 시간을 소요해 기록했다는 점이 멋지다. 의도적으로 네덜란드 속담을 모아놓은 그림도 있고, 아이들의 놀이를 모아놓은 것도 있고, 주제가 다양하지만 그것들을 관통하여, 그냥 저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 농민들이라서, 내 어릴 적에 대한 향수를 조금 채워준다는 면에서도 좋다. 내가 농경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10대 이전에 자주 놀던 할아버지네 동네가 너무 급속도로 폐허화 된 것에 대한 10대 때의 충격이 있어서, 시골 풍경과 풍속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하다. 

 

영화 속 해설자가 갈보리언덕으로 가는 길을 보며 했던 설명에 따르면 다들 자기일 하느라 신의 자식에는 관심도 없다는 걸 그렸다는 점에서 당대로는 신선한 관점이었으며 중세에서 근대로 넘는 지점에 있다고 한다. 영화 초반에 피터 프뤼겔의 아들 얀브뤼겔의 꽃 그림도 나오는 데 아들인 줄은, 팜플렛 보고 성이 똑같길래 찾아봐서 알았다. (나는 꽃그림도 매우 좋아하는데!)

 

 

 

앤은 캐나다로 돌아가서 생업을 지속할 것이고, 다시 유럽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짧은 시절은 유럽에 두번째 갔었던 때, 죽음을 앞에 둔 사촌의 곁에 마지막으로 머물러주었던 때, 그리고 요한이라는 친구와 도시를 돌아다녔던 때 정도로 어렴풋이 남을 뿐일 것이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은 날라가버린다. 그야말로 무상하기 그지 없다. 이 영화는 그럼에도 사는 일에 관해 보여준다. 젊은 날처럼 요란하지 않게 덤덤한 중년의 시선으로. 아주 강력하게 말한다. (영화의 소개글에 나온 찬사들에 대해 오롯이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너무도 강력하게 말한다. 그리하여 '바라봄'이라는 태도가 '노화', '가난'과 불가결하게 느껴지는 인상이 강하다. (때문에 이 영화는 비엔나라는 도시의 문화적 토양에 근거한 동시에, 그 도시 풍경의 별다를 것 없음에 더 나아가 쇠락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본다.) 뮤지엄 아워스엔 평범한 사물, 장소, 장면을 찍은 샷들이 아주 많다. 여타 대중영화에서도 인물이 배제된 이런 장면들이 등장하는 때가 있기는 있다. 그런데 무심한 주인공이 무언가를 상실하고 되찾기 위해 분투하며 변하고 말았을 때, 혹은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이 머물렀던 시간들을 다시 포착할 때야 감동을 주는 도구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비포 선라이즈에서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지났던 장소들을 비추는 샷들이 그렇다.

 

반면 이 영화에서는 사연도 없는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사연이 없다는 점에서만 개연성이 있달까. 말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보여주는 점에서나, 시시콜콜 말했던 친구의 존재를 보여주는 점에서나 감동적긴 하지만, 어떠면에선 정말 편향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런 점 때문에, 옛 그림, 예술 사진 좋아하고, 미술관 혼자 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면 추천해주기 어렵다. 다시 말해 애초에 이 영화를 감상할 것 같은 관객과 10분 안에 잘 것 같은 관객이 구별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영화'라는 매체로서는 큰 도전인 동시에 걸림돌이다. 아마 오늘날의 미술관을 담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비슷한 의지로 만들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감독이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16세기 그림들을 보다가 (영화 속 해설자가 말하는) 나무 아래 투구 쓴 아이에 매료된 경험을 영화로 체험하게하고 싶었던 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작은 디테일과 큰 관념에 똑 같이 집중하고, 다큐멘터리적 특성과 가공의 이야기를 섞을 수 없을까 하는 질문'을 다루고 싶었다고. 그런데 앤이 늙고 돈 없고, 별다른 행운이 뚝떨어지지도 않는 바람에 추운 겨울날 그냥 걷고 보고 마시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니, 감정이입돼서 슬플 지경이다. 클림트와 에곤 쉴레는 전혀 보지도 않고, 먹음직스러운 요리도 전혀 먹지 않는 건 괜찮지만, 예를 들어, 요한이 좋아했던 학생 알바애를 '말로만' 이런 애가 있었는데 그만뒀다고 하지말고, 실제로 등장한다던가 이벤트 경영과에서 락앤롤 하는 애가 나와서 조금 버릇없지만 귀엽게, 강한척하지만 웃기게 좀 보여줬으면 좀 숨통 좀 트였겠는데. 그랬다면 아마도 주제의식이 흐트러지긴 했겠다. 흥.

 

작은 디테일에 집중하는 건 촬영말고 녹음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요한과 앤이 술집에서 대화를 하는데, 접시, 병 같은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난다. 감독은 거친 소음들에게도 목소리를 주었고, 평범한 장소들에 이름을 주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배우들이 장소 순으로 구분되어 나온다. 그리고, 영화에는 보이지 않지만, 감독 자신이, 그리고 몇 명의 동료들이 얼마나 오래 미술관에 머물고, 비엔나를 걸었을지 상상하게 되는 점도 그렇다.

 

 


웬만한 이야기는 다 쓴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말로 서술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그 시간에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 나체로 그림을 관람하던 장면(어린 여자애의 골격이 도드라져서, 일부러 몸 보고 뽑은 모델처럼 보였던 점은 엔쥐)코깨진 얼굴들, 불켜지 않은 병실에서 앤이 노래를 부르고 빛이 계속 변하던 장면 (특히 커튼 레이스의 구멍으로 들어온 볕이 눈을 비추던 순간), 동굴 호수 같은 것들을 보려고, 이 영화를 한 번 더, 세번째로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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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5일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 3시에 보고 8시에 또 보았다.

오전에는 비가 조금 내렸는데 영화관에 갈 때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고, 봄날 같이 온순했지만 안개가 껴있었고 밤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팜플렛이 네 페이지 짜리인데도 감독과 주연배우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감독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화가라고 생각을 하고 그림이 궁금했었는데, 비디오 작업을 주로하는 미디어아티스트라고 하여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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