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파편들은 영원히 불가사의로 남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어떤 날짜, 특정 장소, 철자가 가물가물한 이름 등 지표가 될 만한 것이나마 찾아내려 애썼다.
될 수 있었으나 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짧은 만남들, 어긋난 약속들, 잃어버린 편지들, 오래전 수첩속에 적혀있었지만 이제는 잊힌 이름과 전화번호들, 그리고 의식도 못한 채 마주쳤던 여자들과 남자들.
아, 한때 우리를 고통에 빠뜨렸던 것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얼마나 하찮아 보이는지. 그리고 우연 혹은 불운으로 인해 우리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그리고 우리의 호적에 무겁게 자리잡았던 그 사람들 또한 얼마나 하찮아지는지.
그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꿈에서는 실재했던 모든 것이, 거리들이, 마르가레트와 그의 곁에 이웃했던 사람들이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빛이 진짜였다면? 그래서 그 시절 그 빛 속에 두 사람이 함께 몸을 담그고 있었던 거라면? 그렇다면 당시 그는 왜 불안함과 갑갑함이 읽히는 빽빽한 글들로 공책 두권을 가득채웠던 것일까?
그는 어떤 구역 깊숙한 구석으로 들어가면 그가 젊었을 적 만난 사람들을 과거의 나이와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상상했었다. 그들이 그곳에서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평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거라고. 그 거리들의 비밀한 굴곡 속에서 마르가레트를 비롯한 사람들이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 살고 있을 거라고.
긴 밤이 온전하게 그의 것이었다. 그는 그 구역에 더 머물고 싶었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왜 나는 그 때 마르가레트를 만나지 못했던가? 왜 몇 달 뒤에야 만났던가? 우리는 분명 이 길에서, 아니면 저 모퉁이 카페에서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는 호텔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시절 이후 오랜 세월을 그는 삶의 일상사에 실려왔다.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를 없애는, 그리고 사람들이 세월이라 부르는 일종의 안개, 그 단조로운 흐름 속으로 서서히 섞여 드는 그런 일상사들에. 그는 그 무감각 상태에서 퍼뜩 깨어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저 복도를 따라 프런트까지 가서 마르가레트의 객실 호수를 묻기만 하면 된다. 이 호텔과 주변 거리들에 그녀와 내가 남긴 파장이, 그 메아리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척 아끼던 물건을 며칠 사이에 잃어버리는 일이 있다. 네 잎 클로버, 연서, 곰인형... 반면 다른 어떤 물건들은 우리의 의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 해고 끈덕지게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젠 정말로 벗어났구나 생각하는 순간 서랍 저 깊숙한 구석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도시는 나와 동갑이다. 나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직으로 뻗은 너른 길을 닦고 반듯반듯한 건물들과 푯말들을 세워 늪지를, 본연의 무질서를, 나쁜 부모를, 젊은 날의 실수를 가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나는 불현듯 누군가의 부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공터 위로, 회한처럼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일렬의 낡은 건물들 위로 툭 떨어진다.
보스망스는 걸음을 멈추고 여자가 센 강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저 여자를 쫓아간들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의 통로를 지날 것이다. 그러면 이 신시가지에서 우리 둘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자주 나란히 길을 가지만 각자 다른 시간의 통로를 걷는다. 서로 말을 하고 싶어도 마치 수족관 유리로 가로막힌 것처럼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경계를 넘을 수만 있다면 그도 그녀를 만날 기회를 얻을 것이다.
너무 많이 걸었더니 피로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평온한 느낌과 함께, 그가 어느 날 떠나온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의 같은 계절에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 되어 만나는 것처럼.
대체 어떤 계기가 있어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들, 자신 있는 입술과 눈빛으로 부모에게 사랑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한계같은 자신감과 적자다운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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