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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뵈클린 / 기초회화 보고서 / 다시 그림이다 요약

아르놀트 뵈클린 1827.10.16 ~ 1901.1.16


스위스의 상징주의 화가. 알레고리적이고 암시적이며 죽음을 주제로 한 염세주의적 작품으로 고대 로마신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죽음에 대한 천착과 풍부한 상상력, 세련된 색채 감각이 어우러져 독특한 화풍을 창조하였으며,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은 1827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풍경화가인 요한 빌헬름 쉬르머(Johann Wilhelm Schirmer)에게 그림을 배웠고, 브뤼셀과 안트베르펜, 파리를 여행하며 미술에 대한 견식을 넓혔다. 특히 로마에서의 체류는 고전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며 그의 상상력에 엄청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뵈클린은 초기에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고대의 영웅들과 반인반수의 괴물, 님프 같은 환상적인 신화 속의 피조물들을 즐겨 그려 낭만적 상징주의자로 일컬어졌다.

1850년대 중반부터 신화, 전설, 미신을 배제하고 인물만으로 매우 개인적이고 우의적인 회화를 발전시켰다. 그의 미술은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데카당스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독창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즉, 바그너식 종합예술을 상기시키는 암시적 상징들로 모호함이 느껴지면서 과거와 현재, 신화와 실제의 혼합물 같은 성격을 띠었다. 뵈클린은 모든 그림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며, 마치 한편의 시가 그렇듯 관람자로 하여금 생각을 일으켜야 하고, 또 한 소절의 음악 같은 감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뵈클린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음에 대한 천착이다. 그는 죽음의 선율에 귀를 기울여 그 음조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하고(《피들을 연주하는 죽음의 신이 있는 자화상》), 침묵과 고요의 섬이며, 꿈꿀 수 있는 장소로(《망자의 섬》)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으며,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모습으로(《페스트》) 죽음을 그리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그의 집착은 춥고 음울한 북유럽의 불안한 정서와, 혁명과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의 공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열두 명의 자녀 중에서 여섯 명을 각종 전염병으로 잃은 그의 가족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뵈클린은 1860년 바이마르 아카데미 회화과 학장으로 임명되어 2년 간 머물다가, 1862년 로마로 돌아가 나폴리와 폼페이를 잇달아 방문했다. 이때의 경험은 뵈클린 후기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866년 바젤로 돌아온 그는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뮌헨에서 보냈다. 이후 다시 피렌체로 돌아가 10년 동안 머물렀으며, 피렌체 근교의 피에솔레에서 말년을 보냈다. 그는 1901년 피에솔레 가까이에 있는 산 도메니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등 형이상학파 및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막스 레거(Max Reger) 등 음악가들도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 때 화가를 꿈꾸었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뵈클린의 회화 11점을 소유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의 인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SF영화 《에일리언》의 이미지를 창조한 미술가 H. R. 기거(H. R. Giger)는 뵈클린의 《망자의 섬》에 대한 현대적 해석으로 《뵈클린에 대한 경외》를 선보였다.

주요 작품에는 《피들을 연주하는 죽음의 신이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Death playing the Fiddle》(1872), 《망자의 섬 Isle of the Dead》(1880),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Odysseus and Calypso》(1883), 《페스트 The Pest》(1898)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놀트 뵈클린 (두산백과)



멜랑콜리


클라라브룩만뵐클린의 초상


아나크레온의 뮤즈


풍경을 좋아하고 풍경이 담긴 필름과 사진과 페인팅을 좋아한다. 내가 인지하고 감각한 풍경을 재현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겠다. 다양한 차원을 한 평면에 담는 것이 도전 과제이다. 본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고, 다른 형상을 합성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이라는 게 다른 작가들이 많이들 했던 방식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뵈클린의 풍경은 힌트랄까, 영감을 준다. 초현실주의의 원형같은 느낌이 든다. 익숙한 사물을 본격적으로 절단내서 어먼데 갖다 붙혀 낯설게 하는 효과를 내는 방법을 쓰지 않으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놀드 뵈클린은 1800년대 낭만적 상징주의 작가이다. 신화나 전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상상으로 재창조한 그림을 그렸고 20세기 초현실주의 페인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뵈클린이 그린 초상이 유려하거나 독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풍경이 그러한 것 처럼, 초상도 고유의 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인물의 '표정'이다. 사람들은 왜 초상화를 볼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 얼굴에서 뭘 보나? 작가의 탁월한 필치, 물성, 분위기, 등등, 그리고 알거나 모르거나 하는 누군가가 박제된 앞에서 인간대 인간으로 어떤 공명을 느끼는 것 같다. 뵈클린이 그린 초상은 대체로 불안한 표정을 띠고 있다. 대상을 알 수 없는 눈길. 모델로 서서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혹은 어떤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19세기 저먼곳에 어떤 예쁜 여자들이 그런 감정을 갖고 있었던게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런 정서를 배가시키는 것은 색채의 대비다. 살결은 희고 그 외 부분이나 외곽처리는 어둡게 눌렀다. 그리고 암부의 색채는 대체로 적색 계열이고 다채롭지 않아서 정적이고, 고요하다. 정서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엿보인다. 그런데 앞서 써내린 말들의 토대는 모델의 외모에 있다. 찹쌀떡같이 미끈미끈 포동포동한 피부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유럽 여인네들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지녔다. 속된말로 넘사벽 외모라서, 비현실감을 부여한다.


(초상화 리써치& 선정 이유 보고서 제출용 작성)






Arnold Böcklin 

https://www.google.co.kr/search?q=Arnold+Böcklin&newwindow=1&source=lnms&tbm=isch&sa=X&ei=CIxeU_aUItL18QW914LYDA&ved=0CAYQ_AUoAQ&biw=1366&bih=624

1827. 10. 16 스위스 바젤~ 1901. 1. 16 이탈리아 피에솔레.

스위스의 화가.

암울한 풍경화와 불길한 비유화 등을 그려 19세기 후반의 독일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의 형이상학파 및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상징적 경향을 예고했다. 유럽 북부의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작품 활동을 했지만, 이탈리아의 풍경에서 진정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이탈리아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말년에는 그곳에서 지냈다.

대형 벽화인 〈수풀 속의 판 Pan in the Bulrushes〉(1857경,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으로 처음 명성을 얻었으며 바이에른 왕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1858~61년 바이마르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가르쳤지만 언제나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리워했다. 바젤에 있는 공립미술관에 신화를 내용으로 한 프레스코를 완성한 뒤 이탈리아에 정착했으며 가끔씩 독일에 다녀오곤 했다. 마지막 20년 동안 그의 작품은 점점 주관적인 성향을 띠어 〈죽은 자들의 섬 Island of the Dead〉(188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기괴한 생물들을 나타내거나 난해한 알레고리들을 다루었다.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시 〈죽음의 섬〉을 작곡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들 중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Odysseus and Calypso〉(1883, 바젤 공립미술관)·〈페스트 The Pest〉(1898, 바젤 공립미술관)와 같은 환상적인 그림들은 20세기 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이른바 프로이트적 이미지를 예견하는 병적인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 마틴 게이퍼드 지음 

1.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보기.
호크니는 평생에 걸쳐 '잘 보고 싶어'했다. 회화를 위해서는 좋은 손과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짧은 순간의 미세한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며 계속 훈련했다. 무엇인가 바라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지며 사물을 훨씬 명확하게 보고, 보지 않았을 수도 있던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을 볼지에 관해 질문을 갖고 한 장소에 간 뒤 20분 간 서 있다가 돌아와 자신이 본것을 그리는 과정을 거쳐 기억능력을 높이는 훈련을 해나갔다. 
"우리는 기억과 함께 봅니다.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장소에 서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것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요소가 작용합니다. 이전에 어떤 장소에 가본 적이 있는지, 그곳을 얼마만큼 잘 알고 있는지 등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어제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재현한다는 것.
정규 교육을 잘 이수한 호크니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릴지의 문제에 관해서 고민했다. 1950~6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가 정점에 달하고 그 뒤를 이어 인물형상을 기초로한 베이컨, 프로이트, 뒤뷔페, 자코메티, 드 쿠닝이 떠오른 때였다. 호크니는 추상이 막다른 길에 달하였다고 생각했고, 그린버그에 반하여 구상적 재현이 의미있다는 주관을 가지고 아카데미즘에 저항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해 나갔다. 주변 풍경과 인물을 자신의 방식으로 그리며 자연주의를 전개해나간지 10년이 흘렀을 무렵, 거기서 갑갑함과 잘못되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호크니는 사람들은 당연스럽게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여기고 있지만 사진을 유일한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틀렸다고 느낀다. 우리의 삶은 경험을 통해 시간에 따라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되고 관점은 변해가기 마련인 데 사진은 한 시점에서 한 순간을 담을 뿐이다. 사진은 실제 생활의 부피감을 담지 못한다. 하나의 원근법적 소실점에 근거하여 세상을 따분하고 일률적으로 재현할 뿐이며 정작 그것을 보는 작가 역시 작품 바깥의 고정된 한 지점에 묶인다. 작가는 자신이 심리적으로 느낀대로 정직하게 재현해야한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다. 현실적 부피감과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삶의 본질과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로 작업을 해나가야한다. 사진이 그림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 호크니는 사진기의 재현 방식을 계속 실험했고, 그 결과 평행투시법을 이용하여 공간을 재현하는 포토몽타주 작업을 내놓게 되었다.

3. 새로운 기술.
무대미술, 판화, 카메라, 팩스, 아이패드등 시각적인 것에 관해서면 모든 기술에 흥미를 갖고 자기 식으로 표현해보기를 시도해왔다. 그리고 그럼에도 회화가 의미가 있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했다. 대중매체와 sns의 보급으로 이미지 제작자와 배포 기술이 새롭게 탄생했고 자연이 지배적인 세계에서의 이미지에 대한 감각과 현재는 경험과 그에 대한 실질감이 현저히 달라지게 되었다. 요즘 세대는 광학적투사가 실제라고 느낀다. 그러나 스크린이라는 평면을 통한 비디오 게임이 전혀 실제와 다르고 실제는 좀 더 긴장감 있고 강렬한 것이다. 이렇게 기술의 변화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고 고민하면서도 페인터로서 중심을 견지하고 있다.

4.  나무가 있는 풍경. 여정의 축약과 커다란 스케일 현전성의 시도.
나무는 공간적인 황홀감을 준다. 풍경 속에 존재하면서 공간과 빛을 포착한다. 가지 내부에 공간을 포함하고 있기도하며 미로 같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호크니는 최근 작업에서 내용적인 면에서 집 근처의 숲의 풍경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형식적으로는 캔버스의 평면성을 통하여 작가가 있던 공간에 대한 작가의 물리적/심리적 인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자연히 2차원 회화와 전시 공간과의 관계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느꼈으며, 스케일과 장소들을 포함한 연출을 통해 관객이 캔버스 앞에서서 거기 존재한다는 감각을 느끼도록 하고자 했다.
가능한 많이, 분명하게 보려는 심리적 욕구로 드라이브-여정을 연출하고, 경험하고, 이도하는 시점을 한장의 그림에 재현해내기도 했고 아주 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포스트 사진 시대를 위한 모티브에 관한 회화>라는 작품은 집약적 성격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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