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스웨터 먼지처럼 잔잔히 부서지던 햇빛, 백엽상 주위엔 한 뼘도 못 자란 풀들이 뿌리 뽑힌 채 말라가고 있었다 얼굴이 하얀 아이들 쫓아다니다가 일기장을 찢어 풍금 바람통 속에 넣어 두었다 돌 미끄럼틀 주위를 뛰어다니다 보면 자주 멍이 들었고 동물의 허파를 삶아 잘라놓은 듯 멍 자국이 둘레를 키워가는 동안 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빨아야 흘러나왔던 수돗물에 입술을 적실 땐 갑작스런 코피처럼 내내 떠나지 않았던 녹 비린내, 곧 여행의 끝이 오리란 걸 알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라도 시솔레 음계를 외며 어린 소녀가 철골 비계를 올라갔다 텅 빈 멜로디를 따라 바람통이 종이 쪼가리들을 날려 보냈다 온실 유리를 깨뜨렸고 복도 끝에선 오래, 호루라기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낡은 풍금들이 트럭에 실려 떠나가는 꿈, 깨진 유리 밑엔 난초가 만개한 꽃을 걸어놓고 부드럽게 썩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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