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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츠 발데마이어


(오른쪽) 2007년 후세인 살라얀과 함께 선보인 ‘비디오 드레스(Video Dress)’. 1만 5000개의 LED로 장식해 옷의 표면 이미지가 계속 변하게 했다.


전송한 문자 메시지가 영상처럼 흐르는 론 아라드의 조명 ‘롤리타(Lolita)’, 자하 하디드의 인터랙티브 주방 ‘Z 아일랜드(Z Island)’, 건축과 기술을 접목한 패션을 보여주는 후세인 살라얀(Hussein Chalayan)의 레이저 빔 드레스 ‘리딩스(Readings)’. 모두 지난 5년간 디지털 디자인을 조명, 가구, 패션 디자인과 접목해 미래 디자인이라는 신세계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언뜻 자기 세계가 분명한 슈퍼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뒤에는 30대의 젊은 디자이너 모리츠 발데마이어가 숨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슈퍼 디자이너의 다소 허황될 수 있는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놀라운 기술력을 가진 사람이다. 첨단기술을 탑재하고 난데없이 디자인계에 등장한 모리츠 발데마이어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독일 통일 전에 동독에서 태어나 어렴풋이 사회주의를 겪은 세대다. 유년 시절 겪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충격은 그를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했다. 그때 그가 선택한 전공은 경영학. 그러나 이후 그는 로봇에 흥미를 가지면서 석사 과정에서 기계・전기・전자 공학을 복합적으로 통합한 새로운 개념의 공학인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를 전공한다. 솔직히 말해 다채로운 그의 이력에 ‘디자인’은 없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경력은 오히려 디자이너로서 그에게 득이 됐다. 그가 가진 공학적인 기술력이 슈퍼 디자이너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했으니까. 그는 2004년 론 아라드와 협업한 인터랙티브 조명 ‘롤리타’를 시작으로 이브 베하, 필립 스탁, 후세인 살라얀, 대리석 회사 코리안 듀폰(Corian Dupont) 등 굵직한 ‘파트너’와 함께 작업했다. 단숨에 디자인 세계의 중심으로 진입한 것이다. 40대가 되어서야 ‘영 디자이너’로 주목받았던 필립 스탁이나 후카자와 나오토를 생각하면, 그가 슈퍼 디자이너의 명성을 등에 엎고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가 무임승차한 건 아니다. 스와로브스키 CEO 나디아 스와로브스키는 발데마이어를 ‘디자인에 대한 미학적인 관점을 가진 기술자’라 평했다. 그가 단순히 기술만 제공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그는 슈퍼 디자이너의 전략적인 해결사에서 벗어나 ‘모리츠 발데마이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홀로서기 위한 개인 작업에 열심이다.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며 ‘통섭’이라는 화두가 널리 퍼진 시대에 그는 기술에 능한 하이브리드 디자이너라 할 만하다. 2007년 뉴욕타임에서 발간하는 잡지인 에 ‘스타 테크(Star Tech)’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디자인계는 차세대 디자인 유망주로 모리츠 발데마이어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 2008년 후세인 살라얀이 S/S 컬렉션에 선보인 작품 리딩스. 모리츠 발데마이어가 제작을 맡았다. 무대에는 패션 전문 사진가 닉 나이트(Nick Knight)가 촬영한 영상이 돌아가고,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을 부착한 옷은 움직이는 레이저 빔 200개의 빛을 받아 마치 디스코장의 무대처럼 화려한 연출을 보여줬다. 이 ‘레이저 드레스’는 후세인 살라얀과 모리츠 발데마이어의 2번째 작품이다.
2, 3 ‘리딩스’의 제작 과정. 천을 재단하고 주름잡는 과정 이외에 복잡한 기술이 숨어 있다.



1 이브 베하와 함께 만든 조명 ‘보야지(Voyage)’. 5만 2000개의 크리스털과 2000개의 모션에 반응하는 LED로 세계를 여행하는 물을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이 조명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국 BBC 컬처쇼에 소개되기도 했다.
2 2004년 론 아라드와 협업한 조명 ‘롤리타’. 2100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이 조명은 고전적인 형태의 샹들리에다. 각 크리스털에는 LED가 장착되어 사용자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크리스털 조명 속에서 픽셀처럼 그 메시지를 보여준다. 
3 2006년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 기간에 선보인 자하 하디드의 주방 ‘Z 아일랜드’. 인조 대리석 브랜드인 코리안 듀폰이 의뢰해 모리츠 발데마이어가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맡아 진행했다. 전통적인 부엌의 기능을 유지한 채 미래 환경에 맞는 ‘인텔리전트 부엌’을 제안한다. 멀티미디어 장비와 음향기기가 인조 대리석 안에 숨어 있다. 사용자는 인터넷 서핑이나 음악 감상을 ‘터치’로 조절하면서 즐길 수 있게 했다. 사진은 대리석 안에 TV스크린 LED가 조명으로 켜져 있는 모습이다. 
4 2005년 론 아라드와 협업한 조명 ‘미스 헤이즈 샹들리에(Miss Haze Chandelier)’.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하나씩 전선에 달려 있다. 원하는 모양이나 문자를 LED 조명으로 보여준다.



1 <일렉트릭 키드> 전시회에서 선보인 ‘핑퐁 테이블(Pingpong Table)’. 고전적인 탁구 게임을 2500개의 LED를 이용해 2개의 트랙으로 나누어서 게임할 수 있게 했다. 코리안 듀폰 대리석 표면에 빛들이 통통 튀게 프로그래밍되었다.
2, 3 2006년 9월에 선보인 그의 첫 개인 전시회 <일렉트릭 키드>에는 기존의 테이블 게임을 디지털화해 제작했다. 이 작품은 ‘룰렛 테이블(Roulette Table)’. 미래의 카지노에서 날아온 듯한 이 테이블에도 역시 LED가 심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룰렛 테이블은 바퀴를 돌리는 게 아니라 스위치로 작동한다. 빛으로 나타나는 숫자는 무작위로 생겼다가 사라진다. 전원을 끄면 테이블은 오로지 우아하고 기능적인 원래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1, 2 LED 1개를 자전거 바퀴에 설치해 야간에 안전조명 역할을 하게 만든 자전거 ‘조이 라이더’. 마이크로칩을 이용해 바퀴의 회전 속도에 따라 발광 속도를 조절해 언제나 같은 웃는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3 업로드 2주 만에 유튜브 역대 최고 인기 영상 10위 안에 기록되기도 했던 재미난 록 밴드 ‘오케이 고’. 2007년 11월 런던에서 열린 이들의 공연에는 평소와 다른 독특한 무대의상이 화제였다. 바로 등판에 수천 개의 LED 전구가 달린 LED 재킷을 입은 것. 밴드명의 글자를 하나씩 등에 붙이고 나와 관람객에게 재미나고 변화무쌍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 디자인과 아이디어는 순수하게 모리츠 발데마이어가 진행했다.


모리츠 발데마이어
“신기술 자체가 디자인적인 영감을 준다.”

1974년 구 동독에서 태어난 디자이너이자 공학자다. 그는 독일이 통일된 후 이데올로기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비즈니스’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학부에서는 경영을, 대학원에서는 메카트로닉스라는 다소 생경한 공학분야를 전공했다. 필립스 디자인연구소에서 ‘미래 프로젝트’를 연구하면서 디자인에 눈뜨기 시작했다. 2004년 론 아라드와 ‘미스 헤이즈 샹들리에’와 ‘롤리타’ 조명을 함께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세계 디자이너와 건축가와의 협업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제 그는 천천히 ‘조이 라이더’나 오케이 고의 무대 의상 등 자신만의 이름을 내건 작업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기술과 디자인의 ‘환상적인’ 공생관계를 발 빠르게 보고 싶다면, 이 디자이너의 행보를 주목해야 할 때다. www.waldemeyer.com

‘공학자 같은 디자이너’, ‘인터랙티브 디자이너’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디자인이 아닌 경영학과 메카트로닉스를 전공했다. 스스로 직업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활동한다. 디자인의 매력은 단순히 인접 디자인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 사진 같은 다른 영역까지도 혼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디자이너로 불리고 싶다.

독특한 전공 과정을 거쳐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있다면? 유년 시절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이뤄진 독일 통일은 나를 비롯한 구 동독 출신자들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동독의 공산정권이 붕괴되고 문화가 개방되면서 기존에 주입된 사고를 모두 버려야 했으니까. 생존을 위해 민주주의의 생소한 시스템을 새로 습득했다. 그렇게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됐다. 졸업 후 보쉬(Bosch)에서 근무했는데, 여기서 제작한 로봇이 강렬한 인상을 줬다. 이런 로봇을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직접 제작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이후 필립스 디자인연구소에서 미래 프로젝트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엔지니어 배경을 바탕으로 디자인하고 싶다고 막연히 바랐다. 회사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 프로젝트를 담당했지만, 회사를 나와서는 가까운 미래와 관련한 제품에 관심이 갔다. 호기심에 따라 충동적인 과정을 밟아왔지만 덕분에 경영인, 예술가, 기술자가 하는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필립스 디자인연구소는 미래적인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당신도 이곳에서 근무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필립스는 미래 연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나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필립스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했다. 당시 연구들은 10년 후, 혹은 그 이상의 시대를 가정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현실화되지 못한 게 많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당시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지금 아우라(Aura) TV의 전신이다. 물론 필립스 디자인연구소에서 진행한 실험적인 연구는 지금의 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이 연구소에 역사적으로 길이 남는 제품은 카세트테이프가 일반적이던 시기에 무모하게 도전해서 발명한 콤팩트디스트(CD)가 있다. 회사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연구원에게 어떤 제약도 없이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필립스에서의 시간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착용할 수 있는 로봇(Wearable Robot)에 대한 관심은 후세인 살라얀과의 협업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전부터 ‘착용할 수 있는 로봇’에 관심이 컸지만, 연구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어느 날 일 때문에 ‘2d3D’라는 제작 컨설팅 회사를 찾아갔는데, 마침 이 회사가 살라얀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우연찮게 내 전공인 메카트로닉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같이 작업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평소 살라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굉장히 기쁘게 참여했다.

제품 디자인을 주로 해온 당신에게 패션 디자인과의 협업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패션은 다른 디자인과 확연히 구분된다. 정말 미친(!) 세계다. (웃음) 이런 전혀 다른 세계가 나를 받아들여줬다는 사실이 우선 즐거웠다. 제품 디자이너가 패션과 협업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기에 이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아서 행복하다. (웃음)

패션 업계의 유독 살인적인 마감에 대한 압박이 부담스러웠나? 그렇다. 후세인 살라얀의 크리스털 조명 의상 ‘리딩스’의 경우 제작 기간이 겨우 한 달이었다. 이 기간 안에 연구부터 제작까지 이루어졌다. 패션 업계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놀라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난 뒤 바로 사장시켜버릴 뿐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바자Bazaar>의 아트디렉터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가령 비디오 드레스를 개발한 생각을 포기한 채, 다른 아이템을 향해 질주한다.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을 패션 업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인 나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 협업을 뛰어넘어 본인만의 아이디어로 ‘조이 라이더(Joy Rider)’와 오케이 고의 무대 의상 등을 제작하고 있다. 또한 <일렉트릭 키드Electric Kid>와 같은 개인전을 열면서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만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것이 내게 남은 과제다. 여전히 협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서서히 줄이는 추세다. 물론 다른 디자이너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디자인적인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도전정신을 키워주니까. 실례로 살라얀과의 협업에서 영감을 받아 LED 의자인 ‘바이 로얄 어포인트먼트(by Royal Appointment)’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앙드레 풋만(Andree putman)과 필립 스탁과 함께 작업했다.

엔지니어 출신 디자이너로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은? 작품을 제작할 때 엔지니어링 관련 지식은 유용하게 작용했다. 반면 나의 공학적 지식이 자유로운 발상에 걸림돌이 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그와 관련된 지식은 모두 습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데, 더 습득하고자 하면 할수록 새로운 기술과 반박 이론들이 등장해 혼란만 가중된다. 이런 까닭에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기보다는 관심 있는 대상에 한정해서 그와 관련된 적용 과정과 언어를 습득하고 있다. 이런 연구 과정 자체가 즐겁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디자이너가 있다면? 빛의 시인 잉고 마우러다. 그는 예술과 디자인의 영웅이다. 같은 독일 출신 디자이너라는 사실도 자랑스럽다.

당신 작품과 협업에서 유난히 조명과 관련된 작품이 많은데, 특별히 조명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는가? 조명은 사용자가 이해하기 쉬운 드라마틱한 매개물이다. 기술 적용이 쉽고 다른 제품에 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가능성도 높다. 불명확하고 불가해한 결과물을 마법처럼 보여준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디자인의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 이따금 인터넷에서 발견한 특이한 이미지나 전자기술박람회에서 본 새로운 기술이 강렬하게 남을 때가 있다. 이런 게 길을 걷다 느닷없이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떠오르기도 한다. 기술관련 박람회를 국제적으로 많이 찾아 다니는 편인데, 신기술 자체가 영감이 되기도 한다. 사실 부러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취미생활에 가깝다. 새로운 기계나 회로를 보면 흥분된다. (웃음)

디자인 전문지 <아비타레Abitare>에 당신의 인터넷 취향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연재하고 있는데, 인터넷 검색을 상당히 즐기는 것 같다. 특별히 즐겨찾기 해놓은 곳이 있는가? 인터넷 검색은 내 일의 일부다.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 오라일리(http://radar.oreilly.com)의 메이크 매거진(make magazine)과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 같은 작은 가정용 기기나 장치를 볼 수 있는 가젯(Gadget) 블로그를 찾아 헤맨다. 신기술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눈여겨본다.

생각지도 못한 디자인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당신의 방식 같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기업가다. 결국 처음 전공인 경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다. 미래적이고 다소 미친(!) 아이디어를 경영에 접목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시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싶다. 


1 후세인 살라얀과의 협업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LED 의자 ‘바이 로얄 어포인트먼트’다. 등판에 센서가 장착되어 사용자가 입은 옷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의 색상을 읽어 LED 조명 빛으로 보여준다. 중세시대 왕의 의자처럼 등판이 높은 이 의자는 기독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빛의 후광을 아이콘화했다.
2 의자 등판의 세부 모습. 픽셀을 그래픽적으로 형상화했다.
 


[출처] 월간디자인 (2009년 8월호) | 기자/에디터 : 임나리, 여미영 이탈리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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