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제목이 ‘시’라서 소설가로 활동하셨을 때가 더 생각나더라고요. 감독님이 쌓아온 문학적 소양이 영화를 연출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집요한 심리 묘사를 잘하시는?
심리 묘사를 잘하는 줄 모르겠는데.(웃음) 문학을 한 건 당연히 영향이 있겠죠.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이 <시>이고 시 이야기를 하지만, 저한테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예요. 영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영화를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죠. 물론 여기서 죽어가는 영화는 <아바타>(2009) 같은 영화가 아닌, 어떤 영화죠. 내가 옛날에 하고 싶었고 점점 만나기 힘든, 어떤 영화예요. 사람들은 ‘그게 뭐 중요해’라지만, 중요하죠. 시든 소설이든 영화든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자기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대신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럼 이번 영화를 촬영하시면서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얻으셨나요?
이 질문은 끊임없이 해온 질문이기에, 저 스스로 답을 찾긴 어렵겠죠. 그 답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관객 스스로 각자의 답을 찾는 게 아닐까 해요. 이런 식의 영화, 이런 영화라는 게 어떤 영화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제가 영화를 하는 게 얼마만큼 힘이 있는 걸까, 의미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저뿐 아니라 같이 촬영한 스태프들도 다 했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 같이 한 사람들도 그래도 할 만한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는 어떠냐 하면, 반반이에요.(웃음) 할 만한 거라는 생각 반, 무력감 반.
-처음에는 반반이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부터 반반이었던 거 같은데.(웃음) 처음에는 강했겠죠. 이런 거 필요하다고. 영화를 하지만 점점 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면서 무력감을 느끼고 회의가 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사명감은 없어요. 제가 만든 영화가 없으면 안 될 무언가가 있을까 해요. 금방 그만둬도 아무 영향이 없죠. 어찌 됐든 요만큼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죠. 그렇다고 안 할 순 없으니까. 못하게 되면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렇게 되면 한국 영화계에 타격이 있을 텐데….
전혀 타격 없을걸요. 잘됐다, 이러지 않을까.(웃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있어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죠. 그런 이유로 지금 하는 거고. 그래서 관객에게 묻고 싶어요. 시 같은 거니까. 시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지만,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하고.
-전작을 볼 때 <밀양>까지는 종교 등 거시적인 소재를 미시적인 개인으로 푸셨는데, 이번 영화는 미시적인 소재를 미시적인 개인으로 풀어내신 듯해요.
딱 분류하면 그렇게 보이는데, 꼭 세계관의 변화는 아니에요. 어느 게 중요하고 어느 게 어떻다 이런 생각을 갖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다 그만한 의미가 있어서 시작했으니까. <시>가 거시적인 관점이나 거대 담론은 아니지만 개인의 도덕성이라는 게, 사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또 거대 담론과 맞닿아 있기도 해요. 영화에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게 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TV 화면에 팔레스타인 여인이 나와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 죽어가는 걸 매일 뉴스에서 보잖아요. 근데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에 도덕성의 문제가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기 힘들어요. 자기 문제가 생기면 자신 문제로 느끼지만. 영화 초반에 병원 응급실 밖에서 울고 있던 누군가의 엄마가 사실 미자에게는 자신의 문제잖아요. 그 엄마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식을 잃은 엄마와 다를 바 없어요. 이번에는 사적인 걸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게 아니라, 사적인 게 어떤 거대한 것과 연결돼 있다, 분리된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 전문매거진_김종훈 기자 ] | 무비위크 | 2010.05.04 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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