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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 2010. 8. 31. 18:48

-제목이 ‘시’라서 소설가로 활동하셨을 때가 더 생각나더라고요. 감독님이 쌓아온 문학적 소양이 영화를 연출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집요한 심리 묘사를 잘하시는?

심리 묘사를 잘하는 줄 모르겠는데.(웃음) 문학을 한 건 당연히 영향이 있겠죠.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이 <시>이고 시 이야기를 하지만, 저한테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예요. 영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영화를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죠. 물론 여기서 죽어가는 영화는 <아바타>(2009) 같은 영화가 아닌, 어떤 영화죠. 내가 옛날에 하고 싶었고 점점 만나기 힘든, 어떤 영화예요. 사람들은 ‘그게 뭐 중요해’라지만, 중요하죠. 시든 소설이든 영화든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자기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대신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럼 이번 영화를 촬영하시면서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얻으셨나요?

이 질문은 끊임없이 해온 질문이기에, 저 스스로 답을 찾긴 어렵겠죠. 그 답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관객 스스로 각자의 답을 찾는 게 아닐까 해요. 이런 식의 영화, 이런 영화라는 게 어떤 영화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제가 영화를 하는 게 얼마만큼 힘이 있는 걸까, 의미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저뿐 아니라 같이 촬영한 스태프들도 다 했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 같이 한 사람들도 그래도 할 만한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는 어떠냐 하면, 반반이에요.(웃음) 할 만한 거라는 생각 반, 무력감 반.

-처음에는 반반이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부터 반반이었던 거 같은데.(웃음) 처음에는 강했겠죠. 이런 거 필요하다고. 영화를 하지만 점점 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면서 무력감을 느끼고 회의가 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사명감은 없어요. 제가 만든 영화가 없으면 안 될 무언가가 있을까 해요. 금방 그만둬도 아무 영향이 없죠. 어찌 됐든 요만큼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죠. 그렇다고 안 할 순 없으니까. 못하게 되면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렇게 되면 한국 영화계에 타격이 있을 텐데….

전혀 타격 없을걸요. 잘됐다, 이러지 않을까.(웃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있어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죠. 그런 이유로 지금 하는 거고. 그래서 관객에게 묻고 싶어요. 시 같은 거니까. 시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지만,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하고.

-전작을 볼 때 <밀양>까지는 종교 등 거시적인 소재를 미시적인 개인으로 푸셨는데, 이번 영화는 미시적인 소재를 미시적인 개인으로 풀어내신 듯해요.

딱 분류하면 그렇게 보이는데, 꼭 세계관의 변화는 아니에요. 어느 게 중요하고 어느 게 어떻다 이런 생각을 갖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다 그만한 의미가 있어서 시작했으니까. <시>가 거시적인 관점이나 거대 담론은 아니지만 개인의 도덕성이라는 게, 사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또 거대 담론과 맞닿아 있기도 해요. 영화에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게 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TV 화면에 팔레스타인 여인이 나와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 죽어가는 걸 매일 뉴스에서 보잖아요. 근데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에 도덕성의 문제가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기 힘들어요. 자기 문제가 생기면 자신 문제로 느끼지만. 영화 초반에 병원 응급실 밖에서 울고 있던 누군가의 엄마가 사실 미자에게는 자신의 문제잖아요. 그 엄마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식을 잃은 엄마와 다를 바 없어요. 이번에는 사적인 걸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게 아니라, 사적인 게 어떤 거대한 것과 연결돼 있다, 분리된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 전문매거진_김종훈 기자 ]  | 무비위크 | 2010.05.04 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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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런 거다. 왜 이창동은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억누르면서까지 도덕적 영역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시>에서 이창동의 자기 반영적 성격이 드러난다고 했을 때, 이 작품이 누군가의 고통에 가해자로서 연루된 자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이창동은 미자에게 요구했던 사건에 연루된 자로서의 도덕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자가 사건에 연루된 자로서 시의 도덕을 완성했듯이, 이창동 역시 이 시대의 비도덕과 자신의 연루 가능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균열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의 도덕을 버티고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이창동의 도덕일 것이다.

http://suyunomo.net/?p=5847 안시환, <시詩>시적 형식의 아름다움과 이창동의 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