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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2014. 9. 27. 00:05

유동하는 근대세계.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개념.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 제도, 풍속, 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용어. 우리시대 세계의 질서와 제도가 고체성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유동한다는 생각.

cf. 막스 베버. 강철외투-어떤 선택이든 신중하게 이루어지고 일단 선택되면 벗기 어려웠던 반면, 근대에는 가벼운 외투처럼 어떤 선택이든 정말 유연하게 언제는 벗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변모.

 

16. 이 세계에서 우리들의 모든 것, 아마 거의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우리들이 좇으려고 안달하는 패션들과 우리의 주목을 받는 대상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그리고 그 주목이라는 것도 끊임 없이 움직인다. 바로 어제 주목을 끌던 물건과 사건이 오늘은 주목받지 못하고, 또 오늘 우리에게 흥미를 끄는 물건과 사건도 내일이 되면 관심 밖의 일이 된다. 또한 우리가 꿈꾸는 것들과 무서워 하는 것들,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과 몹시 싫어하는 것들, 심지어 희망을 품는 이유와 염려하는 이유조차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더구나 우리를 둘러싼 조건을, 다시 말해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며 우리의 미래를 기획하려고 어떤 사람들과는 접속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과는 접속을 끊으며,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접속을 거부당하는 그러한 조건들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변화한다. 또한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기회와 이와는 정반대로 더 비참해질지 모른다는 위협도 물결처럼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떠다니면서, 때론 잡힐 듯 다가오거나 때론 사라지기도 하면서 자리를 뒤바꾼다. 그래서 그렇지 않았던 때보다 더 자주 그러한 기회와 위협이 모든 것을 좌우하면서 너무도 신속하고 재빠르게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회와 위협에 발맞추거나 벗어나기 위해, 또 그 기회와 위협이 예정이 방향으로 지나가거나 그 기회와 위협을 앞지르기 위해 예민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 서로 모순되는 의견들과 제안들 사이에서 왁자지껄한 소란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에게는 거짓말과 환영, 쓰레기, 폐기물 같은 껍질들을 분래해내서 읽을 만한 낟알과 진리의 낟알을 뽑아내도록 도와주는 탈곡기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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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은 종종 이야기 유형을 뱃사람 이야기와 농사꾼 이야기르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 농사꾼 유형의 이야기는 마치 언제나 되풀이되는 일 년 동안의 계절 순환처럼 또는 집과 농장, 들판에서 매일 벌어지는 지루한 일상들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하고 얼핏 보기에도 친숙한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방금 나는 얼핏 보기에 친숙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인상 때문에, 그 친숙한 일들에 관해 어떤 새로운 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 또한 하나의 착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착가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 친숙한 것들이 너무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언제나 거기 있어서', '결코 변하지' 않을 듯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만큼 아주 재빠르고 단호하면서도 면밀한 음미의 눈길을 피해가는 것도 없다. 친숙한 것들은 바로 '빛 속에 숨어'있는데, 결국 그 빛은 친숙함 속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오해하게끔 하는 빛이다! 그러한 친숙한 사물들의 평범성은 모든 음미의 눈길을 방해하는 장막인 셈이다. 그처럼 친숙한 사물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 면밀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 소위 '일상성'이라는 의심스러운 장벽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

  물론 벤야민이 거의 한 세기 이전에 만든 이러한 이야기 유형 구분은 이제 원래의 모습처럼 뚜렷하게 적용될 수 없다. 이제는 뱃사람들만 기괴한 땅을 방문할 독점권을 갖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구화된 세계에서는 실제로 지구상의 그 어떤 장소에서 겪게 되는 충격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안전한 공간이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득히 먼 예전으로 거슬러가 보더라도, 옛날부터 농사꾼들에게 전해져온 이야기들조차도 더는 뱃사람들의 이야기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내가 내 편지들에서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농사꾼이 이야기 하는 뱃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 편지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삶에서는 우리 것이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것 속에 있는 특별한 것들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방식과는 약간 다르게 둘러볼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 일상적 사물들과 정말 친숙해지기를 바란다면, 외관상 친숙하게 여겨지는 사물들을 우선 낯설게 만들 필요가 있다.

27. 결국 계속해서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의존하는 방식은 동료들이 사라져버린 자리에 남겨진 공허감을 더욱 깊게 느끼게 할 뿐이다. 공함감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하이테크가 발전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근육이나 상상력 같은 것들을 활용해서 그런 공허감에서 빠져나오던 수단들을 점점 더 잃어버린다. 게다가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그러한 공허감은 잊히거나 은폐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그 공허감이라는 독성을 치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적어도 공허감이 초래하는 고통만은 완화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그리워했지만 그럼에도 점점 더 만날 기회가 적어진 동료들을 이제는 나무로 된 문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창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되면서, 비록 모두 다 새로운 아날로그, 디지털 형태로 변형된 가상적인 동료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동료들이 되돌아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43, 하지만 이제 젊은 살마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형성할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또한 그처럼 그들의 정체성을 재형성하게 한느 바로 그 순간의 어떤 요구(사실상 일종의 변덕에 불과한 그러한 요구)를 불러일으키거나 마치 그런 새로운 정체성에 도달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게 한느 그러한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일이다. 이전 세대의 젊은 사람들이 단 한 번의 정체성형성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점차 끊임없이 계속해서 새롭게 정체성을 마련해야하는 재정체성 형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분명 정체성은 언제든 처분 가능한 것이 되었다. 불만스럽거나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정체성이든 현재의 발전된 시대와 잘 맞지 ㅇ낳는 정체성이든 간에 언제든 손쉽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마도 생분해성이라는 용어가 바로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맹렬하게 추구하는 이상적인 정체성의 특성을 잘 설명해주는 말일 것이다.

... "꼭 해봐야 하고, 꼭 사야 하는 필수품들"처럼 여겨지게 된 여러 선택 사항들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 ... 또한 인터넷에서 상호작용이 표출되는 방식은 다양한 콘텐츠들을 업데이트 할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모습을 묘사할 때 어디를 강조할 것이지를 재설정하는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과거의 흔적들이나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부끄러울 정도로 뒤떨어진 콘텐츠에ㅐ 초점을 맞췄던 부분들도 신속하게 지울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모든 면에서 인터넷은 오프라인 생활에서라면 결코 성취할 수 없었을 정도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재창조하는 노동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러한 노동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며 심지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게끔 한다.

... '접속'이나 '데이트', '미팅', '의사소통', '공동체', '우정' 같은 개념들이 지시하는 대상들이 온라인 세계라는 새로운 위치로 이동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결과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현재의 사회적 유대관꼐와 사회적 약속들을 마치 아주 순간적인 스냅사진 같은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사회적 유대관계와 약속들을 언제까지나 지속되어야 하는 확고한 상태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끊임없이 진행되는 재협상의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 지웠다 다시 쓰거나 덮어쓴느 일.

 

88. 브레송 <아마도, 악마가>. 브레송은 그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함게 목격한 당신의 그 ' 위대한 변화'가 가져올 결과까지도 간파했던 셈이다. 더구나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 중에서도 오로지 그 변화가 가져올 결과에 주목할 수 있는 통찰력과 그 결과를 세심히 살필 수 있는 지혜, 또 결과를 기록할 수 있는 열정이 있던 단 몇 명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결국 그 위대한 변화가 가져온 결과는 노동자와 군인으로 이루어진 생산자 사회에서 소비자 사회로의 이행이었고 그러한 이행의 결과로 탄생한 소비자 사회에서 개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역사적 위치에 따라 명령을 부여받으면서 단기간에 주어진 사상들과 관점들, 임무들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생사자들과 군인들로 이루어진 '견고한 근대solid modern' 사회였던 이전 시대에서 부모들이 하는 역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자녀들에게 산업 현장이나 군대 막사에서 이루어지는 단조롭고 판에 박힌 일을 견뎌내게 하기 위해서 평생동안 자기 단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그렇기에 그 당시 아이들에게는 그 처럼 '규범적으로 규제된'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개인들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 모델이었다. ... 그 시대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부모 자식 간의 상업화. 양육책임감 덜어.

 

97. 그렇기에 그런 물품을 갖는 일으 이제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그 누구든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삶의 일상적인 일부분처럼 되었다. ... 이러한 변화의 결과는 바로 그처럼 획득하게 된 물건과 10대들의 정서적인 유대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읻. 이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물품과의 지속적인 우정이 아니라 단지 획득하게 되는 그 순간 뿐이다. ... 재빨리 얻고, 또 빠르게 버려지고 없어지는 소지품들의 물결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소유물'로 돋보이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더구나 설령 그처럼 소중한 소유물로 여겨진다고 하더라고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쉴 새 없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특정한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그 용품paraphernalia이 아닐 바로 그 스타일style이다. 게다가 그러한 스타일에 맞춰 요구되는 부대용품이 언제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점차 가속화되는 속도만큼 더 필요하게 되기 마련이다.


표준적인 수준에 대한 압박


만일 30년 전이라면 그러한 일은 어떤 특별하게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예를들어 개인용 컴퓨터를 사기 위해 끈기 있게 돈을 모으거나 자신들이 존경하는 감독의 영화나 흠모하는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꾸준히 돈을 모으기로 단호하게 결심해서 두드러진 용기를 품게 된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 그러한 일은 특별한 사람들, 이를테면 최근에 출시된 MP3 플레이어를 곧바로 구매하고 가장 최신 노래를 다운로드하기 위해 빚을 지는 일 따위는 거부하려고 결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니 일부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코모 세간티니는 바로 그처럼 특별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것이며 아주 흔한 유형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처럼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일이 그에게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종종 그 일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을 것이고 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굴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물결에 굴복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한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나간다는 것도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지만, 특히 이 경우에는 금전적인 대가뿐 아니라 종종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에서 더 많은 상처를 입거나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

또한 나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일'은 불가는하다는 세간티니의 주장에도 큰 감명을 받았다. 그가 편지를 보내온 날짜를 고려한다면, 다시 말해 최근의 신용위기 이후 몇 달이 지난 시기이면서 동시에 뒤따라 노동시장의 붕괴가 진행되던 때에 편지를 보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마도 세간티니는 이 시기에 같은 또래 대다수 사람들의 행렬에 다시 합류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영원이 계속되리라 기대했던 것들이 서서히 멈춰서려고 삐걱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마치 깜짝 놀랄만큼 어지러울 정도로 빙빙도는 신상품에 대한 흥분 속에서 소비하는 인생과 같다.


젊은이들은 그처럼 많은 선택들과 기회들의 과잉에 대처하면서 이를 다루는 훈련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대신에 이들은 자신들의 부족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능한 빨리 배울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할아버지들에게나 쓸모 있을 법한 것만을 배운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이란 오로지 죽은 사람들에게나 가르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108. Y세대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모두 직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 인생이란 이곳과는 다른 그 어딘가에 있는것이다.

  아마 오늘날의 젊은 사람들은 곧 미처 예상치도 못한 불쾌한 사실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번영을 누리는 나라들조차도 한동안 망각 속에 잊혀 이른바 영원히 축출되었다고 여겼던 대량 실업과 오래 지속되는 실업 상태가 이제는 되살아날 것이라 예상한다. 만약 이처럼 암울한 예감이 현실화되고 있다면, 현대의 젊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봐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여겼던 무한한 선택과 이동 및 변화의 자유도 이제 막 사라지려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표면상 무제한적인 듯이 보였던 신용도 때문에, 현대의 젊은이들은 일시적으로 역경이 닥칠지라도 무한한 선택과 이동 및 변화의 자유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구나 자신들의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만족스러운 해결책도 일시적으로 잠시 동안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자유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분명 Y세대 구성원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와는 달리 Y세대는 '2차 방어서이 될 만한 참호'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 Y세대에게는 지난날의 추억이자 지금은 거의 잊힌 기술들이 없다. 더구나 이전에는 자주 시도했고 직금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분명 충분히 의지할 만한 요령들이 축적된 저장고도 없다. 결국 '직장을 그만 두는 일' 자체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냉혹하고 협상의 여지도 없는 현실들로 가득한 세상이자 부족한 자원과 강요된 내핍 상택 이어지는 세상이며 문제투성이로 넘쳐나는 시대가 계속되는 이 세상은, 분명 대다수의 Y세대들에게는 철저하게 낯선 나라처럼 생각될 것이다. 그들이 결코 단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낯선 나라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낯선 세상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해서 오랫동안 아주 힘겹고 전혀 즐겁지 않은 견습기간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물론 Y세대가 이처럼 어려운 시험들을 헤쳐나왔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볼일이다. 더구나 Y세대 이후에 막 등장하려 하는 Z세대도 과연 어떤 인생철학을 고안하게 될 것인지, 또 그러기 위해 Z세대가 과연 그들의 부모인 Y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그 세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다시 새로 꾸려나가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더 두고 볼 일이다.


 

384.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까뮈는 바로 인간이 처해 있는 그러한 곤경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동안에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탐구 목적을 열어 놓은채 각양각색의 다양한 해석과 판단들을 따락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지나치게 성급하게 미리 예단해버리는 일에도 반대했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과 잠재력이 결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미리 예단하는 것도 분명 너무나 성급한 일이다. 카뮈는 단지 자신이 서술한 내용의 논리와 표현의 명료성을 살리기 위해, 인간이 처해 있는 곤경에 대한 자신의 묘사에서 모호성과 양면성이라는, 아마도 정의상 그 곤경자체가 지니고 있는 더는 단순화시킬 수 없는 속성들이라고 해야 할 모호성과 양면성을 깨끗이 씻어내려는 모든 유혹들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돌이켜보면, 카뮈가 정의하는 '지식인'이라는 것도 바로 "자신의 마음이 (항상) 자기 마음 자체를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에 나는 한 인터뷰에서 "내 관심사들을 단 한 구절로 요약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

 

 

 

인터넷이 가져다준 상호작용의 능력. - 새로운 요구.


숨을 수 있다 -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