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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실존미학

■● 2012. 7. 23. 00:13

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과 파레시아
“우리 실존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하고 경제적 가치로 환원해 버리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인류의 끔찍한 양극화를 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실존의 미학에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유용하고 효율적인 사람들, 그러므로 자본주의 체제에 동화되어 잘 적응한 사람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생산에서 무용하고 잉여적인 찌꺼기로 낙인 찍힌 사람들, 실업, 을씨년스러운 변두리, 사회적 불안전과 문자 그대로 불완전 속에 버려진 사람들로 인류가 양분되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실존의 미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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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연구자들은 ‘오래된 푸코’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학술대회 참관기_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심포지엄
2012년 02월 27일 (월) 17:55:51진태원 고려대 HK연구교수·철학  editor@kyosu.net

푸코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지적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한국사회성격논쟁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중심 과제 중 하나가 마르크스주의의 복원이었다면, 1980년대 말 사회주의의 몰락은 이러한 희망을 순식간에 무너뜨려버렸다. 그 이후 곧바로 한국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같은 각종 포스트 담론의 열기에 휩싸이게 됐으며, 그 중심에는 날카로운 눈매의 민머리 철학자 미셸 푸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성의 역사』, 『감시와 처벌』 같은 책들은 대학 신입생 필독 도서목록에 올랐고, 담론, 광기, 에피스테메, 규율권력, 파놉티콘 같은 그의 용어들은 순식간에 지적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푸코는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이 연이어 권력을 잡으면서 자라난 민주화에 대한 자신감과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로 표출된 대중들의 애국주의적 자부심을 충족시키기에는 규율권력이나 파놉티콘 같은 개념들은 너무 딱딱했다. 그 대신 들뢰즈가 새로운 사상의 총아로 등장했고 노마디즘, 리좀, 탈주가 지적 유행어가 됐다.

2000년대 후반 다시 상황은 급변했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고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민주주의가 시대의 화두가 됐다. 들뢰즈를 대신해 랑시에르, 바디우, 아감벤, 지젝 같은 정치철학자들이 새로 호명됐고, 신자유주의를 규탄하는 와중에 ‘88만원 세대’와 ‘복지국가’가 새로운 논쟁의 키워드로 부각됐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출간에 쏠린 관심

이런 상황에서 왜 새삼 푸코 심포지엄이 필요할까. 오늘날 푸코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서울 종로의 정독도서관을 가득 메운 연인원 400여명의 청중들 가운데에는 이런 질문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푸코가 한국에 소개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과연 이 ‘오래된 푸코’에게서 어떤 ‘새로운 푸코’를 읽어낼 수 있을까. 
  사진제공: 그린비

이번 심포지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푸코가 국내에 본격 소개된 지 약 20여 년 동안 광범위한 청중을 상대로 한 푸코 학술 행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푸코가 한국 학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외국 사상가 중 한 명이고, 그의 주요 저서들이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은 여러 모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목적은, 푸코 사상을 전체적으로 재조명해보고, 그것이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목적은 최근 푸코 르네상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과 관련돼 있다. 푸코는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에 취임한 뒤, 안식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청중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생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강의는, 1997년부터 강의록들이 유고집으로 출간되면서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특히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된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근간)은 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다루고 있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틀 동안 열린 학술대회 첫날에는 네 명의 연구자가 푸코 사상의 다양한 면모들을 조명했다. 역사학자 고원은 푸코와 아날학파 지적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역사학자로서 푸코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특히 그는 페르낭 브로델이 푸코의 지적ㆍ인간적 후원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간명하게 보여주었다.

반면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임동근은 푸코의 장치(dispositif) 개념이 프랑스 사회과학계에서 어떤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푸코가 권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장치 개념은 그에 따르면 우발성과 이질성의 역사를 설명하려는 푸코 계보학의 물질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그는 이것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상당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구체적인 예들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청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치학자 홍태영은 푸코의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지닌 정치철학적 함의를 따졌다. 자유주의 강의 이후 198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푸코는 주체화 양식에 대한 강의로 방향을 전환했다. 따라서 푸코식의 정치가 어떤 것일지 살펴보는 일은 후세 연구자들의 몫이 됐다. 홍태영은 푸코의 강의록에서 인구와 구별되는 인민 개념이 한 차례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피통치자의 정치’, ‘국가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사회학자 서동진은 ‘푸코와 사회적인 것’이라는 발표에서 푸코에서 정치경제학의 지위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의 대비를 통해 푸코의 내재적 유물론의 한계를 밝혔다. 곧 푸코는 정치경제학을 일종의 아 프리오리로 간주함으로써 反경제주의로 나아간 반면, 마르크스는 ‘노동력 상품’이라는 독특한 상품에 근거해 정치경제학 비판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양자 중에서 더 효과적인 것은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자유주의 비판이다.

둘째 날에는 프랑스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푸코 철학의 여러 측면을 살폈다. 허경은 푸코 철학이 우리의 근대를 설명하는 데 어떤 의의가 있는지 해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푸코의 지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독해하면서 푸코의 철학적 관심은 서양 근대성의 한계를 살피는 데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무엇이었는가, 근대성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라는 비판적 질문을 낳는다.

심재원은 푸코 사상의 전체적인 면모를 집약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푸코의 철학을 관계론적 유명론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관점이 네트워크로 구성된 세력관계로 권력을 규정하는 그의 권력론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후기 강의록에서 나타나는 견유주의에 대한 분석은 푸코가 파레지아(parrhesia, 진실을 말하기)와 실존 양식의 결합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푸코, ‘파레지아’와 실존양식 결합 추구

진태원은 ‘푸코와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푸코가 민주주의를 다르게 사고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는 특히 동시대의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바디우, 랑시에르, 지젝, 아감벤 등)과 푸코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푸코 강의록의 번역자이기도 한 심세광은 푸코가 1983~84년 강의록에서 다루는 파레지아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그는 흔히 파격적인 기행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는 견유주의자들의 삶의 양식은 스캔들을 통해 세계를 변혁하려는 파레시아의 실천의 표현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신자유주의적 예속화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차례의 심포지엄으로 새로운 푸코의 도래를 단언하는 것은 성급할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청중의 열기와 진지한 분석과 실천적 관심이 결합된 발표들을 접하고 나니 이 날의 푸코는 이미 더 이상 예전의 푸코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태원 고려대 HK연구교수·철학
서울대에서 스피노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철학에 관심이 있다. 『라깡의 재탄생』(공저), 『마르크스의 유령들』(역서)등의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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