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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마라이, 반항아

■● 2015. 12. 1. 17:43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호감이 아니다. 두 사람이 하나로 묶여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아벨의 어린 시절 집 안 곳곳에 배어 있던 향긋한 냄새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아벨과 에텔카, 두 사람은 그 흔적을 찾아 더듬거리고, 지나간 삶, 광채 어린 친밀한 시선, 부드러운 몸짓을 찾았다. 이모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순응했다. 자신이 범한 커다란 잘못을 의식한 사람처럼, 때때로 아주 평온해 보였다. 무엇인가가 소년을 앗아가고 또 아버지마저 멀리 데려갔다. 삶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아벨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티보르 주위를 맴돌았다. 배우가 패거리 앞에 나타나고서부터, 관계가 혼탁해지고 긴장과 불안이 넘쳤다. 이따금 아벨은 솟구치는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후나 밤에 방을 빠져나가 티보르의 창가로 달려갔다. 티보르가 집에 있는지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 아벨은 티보르와 단둘이만 있으려고 애썼다. 티보르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 지루해 하는 것을 아는 만큼 그것은 더 고통스러운 욕구였다. 티보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붙잡았다. 집안의 온갖 비밀을 일러바치고, 만날 때마다 선물을 하고, 작문 숙제를 대신 해주고, 이모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하게 했다.

 


  차라리 책이 더 낫지 않을까. 집에서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걸. 타인에게서 받는 것은 고통스럽고 왠지 지저분 한 것 같아.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 있다니,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 내가 티보르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알고 있어. 티보르는 나보다 아둔해. 아둔하다는 것, 그건 뭘 의미할까? 사람을 사귀거나 옛날에 들었던 목소리들 가운데서 어느 목소리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때 느끼는 그런 흥분을 티보르는 몰라. ...하지만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사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을거야. ...어쩌면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나도 살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지 않을까. 나쁘지 않을거야. 그런데 지금은 뭐지? 왜 우리가 여기 서 있지? 티보르는 나를 증오해. ... 우리 모두가 그 동안에 서로를 증오하게 된 것일까? ...티보르가 나를 증오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티보르는 아둔하지만, 그래도 나를 증오하는 건 싫어. 티보르는 나하고 완전히 달라. 그러나 잘생긴 것은 뭔가 특별한 거야. ...티보르가 잘생긴 걸 잊으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서로 잊는 거야. ... 티보르는 누구나 좋아하는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아마데를 떨쳐버리고, 에르노와 하바스한테서도 벗어나야돼. 이제 티보르의 꿈을 꾸지 말아야지. 티보르하고도 끝이야. 내 눈으로 본 것을 전부 글로 써야지. 우선 티보르하고 결별해야 돼. 인간은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그런데 지금은 뭐지?


그런데 지금은 뭐지?


그런데 지금은 뭐지?


그런데 지금은 뭐지?


그런데 지금은 뭐지?




저렇게 춤을 추면서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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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기 속에 있었다. 11년이면 한학기 휴학했다가 다시 복학해 서울 왔다갔다하며 집없이 떠돌아다니고 재생과 자주 놀고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를 피워보았던 때다. 여름에 비가 많이 왔었다. 절제할 줄 몰랐고, 나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할 줄 몰랐던 그 땐 이런 아이들에 감정 이입을 잘했나보다. 산드로마라이 책을 여러권 도서관에서 빌려읽었었나본데, 일기에 없었으면 읽은지도 몰랐을 거다. 너무 낯설어서 이걸 읽었나 싶은데.

냄새, 흔적, 너와 나를 구분 못하는 우정, 곤욕스러운 부대낌, 한권의 책, 과 같은 모티브는 내가 언제라도 빠져들었을 게 분명한 것들이다. 그 땐 아마 이 아이가 나 자신과 같다고 느꼈을 거야 아마. 4년이 지났고 나는 제법 의젓해져서 이제 향긋한 냄새나는 공간을 내 힘으로 꾸려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내 곁에 누가 있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고, 애정을 원하면서 독립을 원하고 있다.

3년 후, 5년 후에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윤곽이 잡힐까? 모르긴 몰라도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포기를 잘하게 되기는 할까? 어디로 가든 말이야, 잘 자랄거야. 잘 지내고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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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많이 웃게 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란 걸 알게됐어. 그들에게 나도 그런 존재일 수 있게, 중심과 여유를 찾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