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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 2012. 12. 2. 12:33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