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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2012. 4. 4. 03:07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


-저녁의 소묘 4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한 백년 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내 몸이 

커다란 항아리 같이 깊어졌는데


허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


알 것 같다.


일어서면 다시 백년 쯤

볕 속을 걸어야한다.


거기 저녁 잎사귀

다른 빛으로 몸 뒤집는다 캄캄히

잠긴다


- 저녁 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