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시
그토록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았던 괴테는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책 제목을『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이라고 붙였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는데 그 어떤 공상적, 허구적 요소를 삽입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고 기술하고 싶어 했다. 진실이란 그의 생애의 고립되고 흩어진 사실을 주워 모으는 것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거기에 충분할 만큼의 생생한 의미를 집어넣어 주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마냥 외면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 집착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미건조하게 지나친 현실에 매달려 시적 상상력 없이 삶을 산다는 것 또한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엑커만과의 대화’에서 괴테는 ‘실제적인 진실에 대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불만의 뜻을 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낯선, 그리고 거기에 대해 자신들의 상상력이 아주 기이하게 전개될 수 있는 나라와 환경을 더 좋아하네. 그런가 하면 현실적인 것에만 매여서 ‘시적 상상력’이란 조금도 없는 편협하기 그지없는 요구만을 일삼고 있네.”(1825년 12월 25일)
역사는 ‘살아 있는 현실의 기록’이다. 신화 속에 닫혀 있는 죽은 박물관의 전시장이 아니다. 진정한 역사가라면 ‘현실과 시적 상상력’이란 이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역사가는 경험주의로서 사실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자이며 동시에 탐구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게 마땅히 현실을 차분히 직시하는 ‘시적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사실(facts)뿐만 아니라, 사실에 대한 상상력(imagination)이 가미돼야 한다. 이 두 요소의 적절한 역사 변증법적 종합, 다시 말해 역사적-현실적 사실들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자유로운 상상력과 결합되어야 올바른 역사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스스로 늘 되새기며 “운명은 순순히 따르는 자를 이끌고 순순히 따르지 않는 자를 억지로 끌고 간다”는 세네카의 말을 갖다 붙여야 제대로 곱씹어지는 부류의 인간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논리적으로 잘 설득되지 않고, 잘 알아먹으려 하지 않으며, 시적 상상력이라곤 조금도 발휘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지독히 도그마에 빠져 한 가지 잣대로만 세상을 재려는 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아류에 속하는 이들을 통털어 우리는 ‘일차원적 인간 집단’이라 부른다. 이들은 역사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망각하고 현실에 집착해 영혼을 팔아 개념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 시대는 이 땅에 최초로 일어난 근대화의 발아이자 시발점이고, 4·19는 불법의 학생운동이고, 5·16은 군사 쿠테타가 아니라 민족 웅비를 위한 혁명이고, 광주의 민주화 운동은 시민들의 폭거이고…, 이렇게 못마땅한 역사적 진실을 오도하게 만든 것은 ‘잃어버린 역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정녕 하는 소리다.
역사가 이데올로기의 싸움판이고, 진흙탕 속에서의 정치권력의 쟁탈전 끝에 수확된 승리자의 선물과 같은 것인가? 아직도 정권을 찬탈한 자가 역사의 주인이 되는 그런 야만적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인가? 역사가 올바로 쓰이고, 올바로 읽힐 때 역사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생활의 중심에서 안정과 화합을 되찾고, 우리를 진정한 자유의 분위기로 이끌어 줄 수 있다. 그래야 한 시민을 건전한 시민으로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성을 유지하는 문화적 수단인 셈이다.
역사는 그저 부서진 거울의 흩어진 단편들(disjecta fragmemta)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참된 인간, 개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역사를 정권의 취향에 맞도록 고쳐 쓰고, 임의적 잣대로 흔들면서 혼돈된 정치적 질서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일본의 우익들이 역사를 왜곡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국민들을 호도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덩달아 미치광이의 칼춤 판에서 같이 맞장구치며 춤춰서는 안 된다. 역사교육도 시(詩) 교육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의 상상력을 북돋아 줄 수 있는하나의 자기 인식의 지적 훈련이 되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이 민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인간적 세계를 세워나갈 수 있도록 역사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역사 교육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물며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데’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제 운명을 가르쳐도 받아들이지 않는 독단과 술수로 가득 찬 저 일차원적 인간들, 저들을 용서하는 길은 저들을 이해하는 것일까? 바로 이들이 괴테의 말처럼, “현실적인 것에만 매여서 ‘시적 상상력’이란 조금도 없는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아주 어리석은 자들이다.
1. 인간이 빵과 정의를 필요로 한다면 그 같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만 인간은 마음의 빵인 아름다움과 순수함 또한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카뮈
2.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는 말했습니다. 맞아, 나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영화도 필요해.
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말했습니다. 맞아, 나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책도 필요해.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는 말했습니다. 맞아, 나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노래도 필요해.
연인들은 말했습니다. 맞아, 나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해.
농부들은 말했습니다. 맞아, 나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3. 봄날 섬진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 전남 곡성 죽곡에 이르게 되면 수려한 산세와 깊은 초록색 강물에 맘을 뺏길 것입니다. 은어가 뛰어노는 강물입니다. 오래전 한 부부도 그랬습니다. 그 부부는 곡성을 처음 보고 바로 여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남편은 대학 졸업 때 이미 농민 운동을 하기로 맘먹고 화성을 거쳐 풀무학교로 유명한 홍성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정말로 곡성에 왔습니다. 남편은 농사를 짓기로 하고 손재주가 있는 아내는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미용실 이름은 빨강머리 앤이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살 집을 구하러 곡성을 뒤졌습니다. 마침내 해발 400미터 되는 산 중턱에서 집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위에 나무가 가득한 것이 별천지인 양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마을 회의에 가서 동네 어른들에게 그 집에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슨 생각으로 이 마을에 들어왔는지 조목조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에너지를 조금 쓰고 살고 싶고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고 저금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노발대발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니? 저금을 하지 않겠다니?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농부들의 눈에 그의 말은 무책임한 건달의 말이자 농부들의 세계에 대한 분별없는 도전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크게 화를 내면서 그 부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도운 노인이 한 분 있었습니다. 남편은 살아오면서 어느 마을에나 지혜로운 노인이, 그러니까 인디언 추장 같은 분이 꼭 한 명씩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는데 바로 그 노인도 그런 분이란 인상을 받습니다. 그 노인은 그때 나이 일흔이었고 마을회장이었습니다. 노인은 남편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젊은 청년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저 젊은 청년에겐 깊은 생각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다. 일단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짓게 해보도록 하자.” 그래서 그날부터 남편은 땅을 얻어서 일 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을회의에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일 년 지나니 마을 어른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와서 살자.”
사실 정확히 말하면 마을 어른 중에서도 할머니들이 품어줬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들은 부부의 예쁜 두 딸을 품어줬습니다.
“우리 마을에 와서 살자.”
그것이 200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쌀 수입 개방논의가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은 열심히 쌀 수입 개방 반대 투쟁을 했습니다. 남편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투쟁하는데 왜 성과가 없을까? 집회 현장에 나가도 우리 농민들은 연사가 하는 말만 듣고 박수 치다 돌아온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농민들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를 해야겠다. 그는 품위 있는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품위 있는 삶은 존중받는 삶이었습니다. 존중받을 만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율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농민들이 아무런 존중도 받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농민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빠지는 것, 그것 자체로 모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농민들이 울분 같은 감정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공부를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2005년 시위에 나갔던 보령 농민 운동가 한 명이 경찰 방패에 맞은 며칠 후 뇌출혈로 죽었습니다. 농민들은 대학로에서 규탄 집회를 하고 광화문까지 걸어갔습니다. 연사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경찰과 정부가 사과할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말자! 남편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진짜냐? 진짜로 우리 밤새는 거냐?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무 잘라다가 물 끓이고 불 피우자. 가로수라도 자르자. 11월의 밤은 춥다. 따끈한 오뎅도 준비하자! 그는 죽은 사람을 위해 하룻밤 못 새울 것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시쯤 되니까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최후로 200명 정도만 남았을 때 경찰이 그들을 동그랗게 한군데로 몰아넣었습니다. 남편은 곡성에 울면서 내려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 같이 밤을 새우지 못했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이렇게 농민 운동을 해서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는 농민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더욱 굳혔습니다. 이듬해 1월 농민회 총회 때 그는 도서관을 만들자고 말했습니다. 돈은 없지만 책은 집에 있는 것을 실어 오면 되고 도서관은 빈 농민회 사무실 쓰면 되고 책장은 나무 구해다가 직접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면장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들었고 이장회의 때 도왔습니다. 그 회의 후에 농민들은 각자 자기 집에 있는 책을 실어 왔습니다. 일제시대 교과서부터 무협지까지 별의별 책이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농민들은 도서관의 한 부분을 직접 지었습니다. 이제 남편은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 곡성 죽곡 농민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재형이니 김재형 관장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농민들은 자격증 공부를 하고 한글과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그곳에 옵니다. 무엇을 누구랑 공부할지는 농민들이 회의 끝에 결정하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도서관 카페도 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도서관장은 생각했습니다. 맞아, 시골 할머니들의 사소한 말 하나에도 시적인 데가 있잖아? 시 문학상을 한번 공모해 보면 어떨까? 관장은 이장들에게 부탁했고 이장님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시 쓰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2011년의 일입니다. 한 마을 전체가 쓴 시는 시집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도서출판 강빛마을(죽곡 마을에서 차린 출판사입니다.)에서 펴낸 죽곡마을 시집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가 그 제목입니다.
4. 한 할머니가 누워 있습니다. 그녀는 당당하게 죽곡 시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탔습니다. 할머니의 고향은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입니다. 그녀도 산수유 꽃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당시 마을에서 유일하게 보통학교를 나온 귀하게 자란 딸이었습니다. 구례와 곡성은 강으로 연결이 됩니다. 칠십 년 전 시집올 때 그녀는 아마 강을 따라 걸어왔을 겁니다. 강을 따라 걸어올 때 강물에서 빨래하는 동네 여인들을 훔쳐봤을 수도 있습니다. 시집온 뒤 그녀는 농사도 짓고 실도 자았습니다. 실 잣는 일은 고되었기 때문에 손가락 껍질이 다 벗겨졌습니다. 친정에 살 때 고생이라곤 몰랐기 때문에 그녀는 남몰래 자주 울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잘생긴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결혼 전 신랑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게 그녀가 평생을 살면서 뭔가를―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에 대하여, 어쩌면 고향의 풍경에 대하여―써본 유일한 경험이었겠지만 그 편지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삶은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오래된 편지나 약속 같은 것을 잡아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열아홉에 만난 신랑은 그녀 나이 스물여섯에 전쟁에 나갔다가 죽고 맙니다. 그 후에 그녀는 시어른들을 모시고 신랑 없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씩씩하게 살았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작은 마을의 부녀회장을 했습니다. 피부가 막 화장한 사람처럼 뽀얀 그녀는 곱게 나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벌써 여든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몇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손과 오른팔을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활동적이던 여인이 그리 되고 나니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나눠주길 좋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품이 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 집엔 마실 오는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그 마을에 관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아팠을 때 그녀는 고향집을 떠나 병원에도 있고 아들 집에도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기어이 고향집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돌아오고 싶어 했을까요? 저는 그녀에게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고독이 두렵지 않은 건가요? 남달리 강인한 걸까요? 그런데 그녀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제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에 던지고 침묵을 지킵니다. 그 침묵 사이에 시 한 수와 무수한 기억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 소수민족 이족 시인 지디마자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가 이 땅을 깊이 사랑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만도
이 땅에서 죽기 때문만도
오래된 족보 때문만도 아니다
(……)
내가 이 땅을 깊이 사랑하는 이유는
저 꿈같은 낡은 노래가
마음을 저토록 슬프게 저미기 때문만도
이 땅의 어머니의 애무가 특별히 따사롭기 때문만도
이 땅에
우리의 따뜻한 기와집이 있기 때문만도
수천 년간 낮은 문간에 앉아
우리를 위해 실을 잣다
죽거나 살아 있는 할머니들 때문만도 아니다
(……)
내가 이 땅을 깊이 사랑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그런 일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눈시울 적시며 노래를 불러줘도
그는 바윗돌처럼 입을 굳게 다문다
오직 내가 슬프고 괴로워
어딘가 기대 누울 곳을 찾을 때
나는 이 땅을 느낀다, 무거운 요람을
살랑살랑 흔드는
이족의 아비를.
―지디마자, 「땅」
그녀 손에 묵주나 염주 같은 것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녀 손에는 리모컨이 있고 그녀 옆에는 약 봉투가 있고 그녀 앞에는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앞에 작은 상패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바로 그녀가 받은 우수상입니다. 할머니가 시를 쓰기로 맘먹은 것은 마을 이장님 때문이었습니다. 마을 이장님이 몇 번이고 찾아와 “할머니가 필요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장님은 마을 사람들이 시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도서관장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관장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농민들이 시를 쓰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 “불조심하세요. 전기 아껴 쓰세요. 물 아껴 쓰세요.”라고 끝맺던 이장님의 말이 이렇게 바뀐 셈입니다. “여러분, 불조심하세요. 전기 아껴 쓰세요. 물 아껴 쓰세요. 시 쓰세요.” 할머니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녀는 손으로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시를 오래전 여인들이 노래하듯 입으로 불렀습니다. 그걸 봉사활동 나온 간병인이 받아 적었습니다.
팔십 평생 살아오면서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이제사 돌아보니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았는지
이제는 몹쓸 놈의 병을 얻어
발 한 짝도 내디딜 수가 없네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마당 앞에 심어놓은
호박덩굴 자라나는 모습이며
텔레비전에서 전해주는 세상 이야기와
연속극을 보는 게 내 생활이 되었네
저 산에 해 저물어가듯이 내 인생도 저물어가네
―김봉순, 88세 농사, 곡성 용정리
5. 할머니는 이 시를 아주 쉽게 썼습니다. 그녀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시로 바뀐 셈입니다. 쓸쓸함이 시로 바뀐 셈입니다. 존재가 시로 바뀐 셈입니다. 황혼이 시로 바뀐 셈입니다. 하지만 이 시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녀가 호박 넝쿨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손끝 하나 까닥할 수 없이 누워 텔레비전을 볼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머니가 다음 날 저 산 너머 해가 뜨면 누군가 자기 집으로 찾아오길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집을 나올 때 할머니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것, 그것은 집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엇을 싸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궁금해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의 새로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즐거워 보일 때는 마을 사람들 소식을 주고받을 때였습니다. 그녀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쩌면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입니다.
산속 뻐꾸기가
언제 둥지를 트는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누군가 내게
꿀벌이 노래하는 바위가 어디냐 물으면
그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지
매미의 연주는
신비로운 햇살로 가득하지만
오직
메밀씨 뿌리는 계절뿐이라고 말해줬어
아, 사람의 기억은
때로 신통하기도 하지
내기할까
만일 운명이 나를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려보내준다면
그 자리에서 눈 꼭 감고
먼 곳 희미한 소리까지
알아맞혀보겠어
소녀의 살랑대는 치맛자락인지
언덕 위 풀 뜯는 양떼인지
―지디마자, 「세월」
그런데 저는 그녀의 시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은 어떤 구절을 떠올리려고 애가 타게 노력중입니다. 명확하게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 그것은 황혼을 바라보는 사람이 다른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엔 중심이 되는 두 이미지가 있습니다. 근심 어린 마음으로 정시에 귀가하라고 아이에게 경고하는 어머니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말은 뿌연 밤안개에 쌓여 있습니다. 결국 할머니의 시는 “예 지금 돌아가요!” 같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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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서관이 생기고 난 후 그곳에 제일 열심히 드나드는 사람은 농부 최태석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도서관을 찾습니다.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군대 갈 때 말고는 이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왜 큰 도시로 나가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아서 딴 데 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그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를테면 혹부리 영감 같은 이야기들을요. 어려선 친구들과 나무를 하다가 이야기를 했고 불 꺼진 밤엔 또 어둠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 날 그는 돈이 생기면 버스를 타고 광주 같은 큰 도시에 가서 헌책방을 찾아갔습니다. 요새도 어쩌다 서울에 가면 꼭 청계천 헌책방에 갑니다. 그는 광주나 서울에 헌책방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죄다 알고 있습니다. 새 책은 비싸기 때문에 헌 책 중에서 보지 않은 것을 사 오곤 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대하역사소설입니다. 김삿갓 방랑기나 정비석의 소설들, 『삼국지』, 『수호지』, 『금병매』. 그 책에는 쓸쓸하고 안타깝게 죽은 왕들의 이야기, 충성과 배신, 허망함과 진실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옵니다. 왕의 삶이든 민초의 삶이든 다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그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는 또 농민신문의 ‘유머’난에 있는 글들을 오려서 모아둡니다. 그가 이렇게 모아두는 이유는 논일을 하다가 혹은 밤에 돌아와 쉴 때 혹은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그에게 이야기 한 수 들려달라고 합니다. 그는 그때 준비해 뒀던 이야기들을 쫙 펼쳐놓습니다. 동네에선 노인에겐 노인용으로 아이에겐 아이용으로 논이든 길거리든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서 이야기꾼 할아버지로 통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최태석 할아버지는 특히 65세 이상의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마디 농을 던집니다. 그러던 그가 요새는 한시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그의 할아버지에게 한자 다섯 개를 배웠습니다. 천(天), 고(高), 일(日), 월(月), 명(明). 지금 할아버지 얼굴은 잊었어도 그 한자 다섯 개는 기억합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그 다섯 한자 안에 무궁무진한 세계가 들어 있습니다. 하늘 천 자만 해도 그 안에 큰 대 자도 있고 한 일 자도 있습니다. 그는 한자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한시를 이해하긴 힘들었는데 한번 직접 써보니 점점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그의 롤 모델, 따르고 싶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은 김삿갓이 되었습니다. 김삿갓이야말로 가장 멋진 한시를 쓴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시를 쓰기 시작한 뒤로 그의 인생 목표는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학문은 끝이 없더라는 옛말도 있는데 정말로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나오고 늙어 죽도록 배워도 다 못 배우고 가겠구나. 그의 관심사는 시간이 넉넉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시 한 수 더 써볼까? 하는 겁니다. 소도 먹이고 나무도 해야 하는데 시도 써야 하고. 그래서 그는 겨울을 제일 좋아합니다. 시간이 많으니까요. 그의 아내는 새벽 서너 시쯤 얼핏 깬 날이면, 최태석 씨가 은은한 불빛 아래 시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젠 이렇게 말합니다. 시 써야 하는데 소도 먹여야하고 나무도 해야 하고. 시를 쓰는데 자꾸 잡념이 떠오른다고. 일 생각이 나서 시에 집중할 수 없다. 본래 일하는 농부에게는 시 생각이 잡념일 텐데 시를 열심히 쓰시다 보니 순서가 뒤바뀌고 만 것입니다. 그는 이번 죽곡 농민문학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탔습니다.(그는 한자로 썼지만 한글로 옮깁니다.)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돌투성이 밭갈 때가 언제이던가
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
세월이 가는 동안 녹이 슬고 말았네
풀만 먹고 자란 소 힘이 남아돌건만
쟁기질은 경운기가 도맡아 하네
할 일 없는 소 나만 쳐다보니
적재함에 있는 풀 언제 주려는가
―최태석, 61세, 농사, 태평리
최태석 씨 외양간에는 정말 경운기에 쟁기질을 맡겨 버려 할 일이 없어 심심해 보이는 소가 있습니다. 최태석 할아버지는 이제 감자, 토란 등에 대한 시를 씁니다. 그는 자기 시를 이야기 시라고 합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시처럼 쓴다는 말입니다. 한자 하나가 중요한 이치를 품고 있듯이 시 한 편은 그 안에 세상사의 놀라운 이치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영영 겉돌지 않고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 질문에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파악함으로써 우선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자기 노동과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덜 소외된 사람입니다. 뛰어난 이야기꾼들은 먼 곳에서든 가까운 곳에서든 삶의 지혜를 얻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무리 먼 곳에서 이야기를 끌고 오더라도 그에겐 그것을 지금 여기서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친김에 그의 가족에 대해 좀 더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집 방 문을 열었을 때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태석 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머리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아들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앉아서 아주 진지하게 용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너무 진지해서 그의 주변 공기마저 절도 있어 보였습니다. 아들은 조각가이기도 합니다. 마루에는 통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든 테이블도 있습니다. 그 테이블에도 용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최태석 씨의 아내는 부엌에서 요릴 하고 있었는데 그녀 또한 예술가입니다. 그러니까 이 가족은 죽곡면의 아티스트 패밀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녀는 한가한 저녁엔 꽃 그림을 그립니다. 거실 가득 그녀의 꽃 그림이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니 수확을 마친 농가의 평화로운 겨울 저녁에 대해 제가 얼마나 상상력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농가의 저녁 거실이라고 하면 오로지 노동과 노동의 흔적, 무료한 휴식과 검소함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실에는 소박하면서도 풍부한 예술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민간신앙과도 같은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 가족이 사랑하는 온갖 사물들은―볼펜이나 의자 시계 컴퓨터까지도―그 가족들을 기묘하고 따스한 아우라로 지켜줍니다. 그녀의 꽃 그림은 아주 독특합니다. 세밀화와 민화가 섞인 형태의 그림입니다. 그녀는 꽃을 그릴 때 꽃 옆에다 꼭 작은 점을 찍습니다. 그것은 바로 향기입니다. 그것은 미녀가 입언저리에 찍어놓은 점같이 보였습니다. 최태석 씨 아내의 또 다른 취미는 무협지 읽기입니다. 그녀는 무협지가 시원시원해서 좋다고 합니다. 최태석 씨가 김삿갓을 읽는 밤에 그의 아내는 무협지를 읽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정말 고수인지도 모릅니다. 거실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멀리서도 다 듣고 한마디 가르침을 내립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말을 받아 적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 그의 가족은 최태석 할아버지, 그의 부인, 며느리 이렇게 세 명이 작품을 실었습니다. 무협지를 좋아하는 최태석 씨 아내의 시는 이런 겁니다.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습니다.
산속에서 노인을 만나다
깊은 산 탈진한 노인을 발견하였네
하룻밤을 산에서 지새웠으니 일어나지도 못하네
김밥과 물을 드리고 먼 산길을 엎고 내려오니
캄캄한 밤도 되고 어디로 가야 할거나
구조대원들은 일찍 하산하고 갈 길은 험난하구나
반딧불 같은 핸드폰이 산길을 인도하여
드디어 노인과 가족 상봉―
우리 가족은 상처투성이지만
노인의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모셔 가네
장하다 우리아들!
그 험한 밤길을 엎고 내려오다니
노인을 구조하여 마음 흐뭇하구나
―이향재, 59세, 농사, 태평리
일하는 사람들에게 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공부가 다 무슨 소용 있을까요? 좀 범위를 넓혀서 한번 취업을 했다면 혹은 학교를 졸업했다면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에겐 문득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며 ‘그런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거야?’라고 묻는 마음 아픈 순간들이 있습니다.
곡성 죽곡 마을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부녀회관입니다. 부녀회관의 문을 열면 할머니들이 목침을 베고 눕거나 앉아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녀회관에서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웁니다. 그 할머니들 중 많은 분들이 곡성 시문학상 공모전에 참여했습니다. 자기가 쓴 시를 읽고 또 읽은 사람 중 하나는 김봉순 할머니입니다. 그녀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황토집
저 푸른 산골에다
황토집 덩실지어
산새들 노랫소리가
청정하게 들리네
가만히 누워 있으니
골짝 졸소리도 졸졸
맑은 소리
나도 몰래 잠이 들었네
청청한 내 마음 한량 없네
뉘우침 없이 보내리라
―김봉순, 64세, 농사, 용정리
그녀는 정말 황토집을 지어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시도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녀는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메 내가 쓴 시를 여러 사람이 보는 게 기뿌오. 내가 쓴 글을 누가 본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응께. 내가 쓴 글을 시상에 누가 볼 건가? 내가 맘에만 담고 있었던 건데.” 그녀는 시를 쓰고 나서 뭔가를 찾아낸 기분, 남들 모르는 것을 자신이 찾아낸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김봉순 할머니가 언니로 모시는 학습반장 조남임 할머니. 그녀는 자신이 시를 쓰고 나서 나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자식들에게도 자랑한 그녀의 시는 이렇습니다.
안개―소리 없이 사라진 너를
강물을 바라보니
자욱한 안개는
뭉게뭉게 연기처럼 바람처럼 하늘 높이 사라지고
잔잔한 이슬은
풀잎 위에 물방울들 한들한들 반짝이며
소리 없이 사라진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
동녘지면 환한 아침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구려
나의 짧은 인생을 뒤돌아보니
너무나 허무하구려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리라
―조남임, 75세, 농사, 용정리
정말로 곡성마을 보성강 안개는 아름답다고 합니다. 강 안개 위로 햇빛이 내리치면 정말로 안개 위에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가 있는 듯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미지의 세계에서 내려오는 빛은 우리에게 뭘 말해 줄까요? 이 두 시엔 공통된 정서가 있습니다. ‘남은 인생 뉘우침 없이 후회 없이 살리라.’ 그런데 두 할머니는 시를 배우고 한글을 배우는 것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김봉순 할머니는 배움의 기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먹고살고 아등바등 참 거칠게 살았어. 모르면 그렇게 살아도, 알고 나면 그렇게 못 하지.” 조남임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배우면서 다시 어린애가 되었어.” 할머니들에게 남은 생은 그저 인생의 막바지가 아닙니다. 또 다른 삶, 다시 시작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삶입니다. 다시 어린애로 사는 두 번째 삶입니다.
김재형 관장은 농민들도 품위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시를 쓰니 품위 있다는 말이 아니겠지요. 저는 일전에 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도 자기 나라에선 기타를 칠 줄 알고 노래를 부를 줄 알고 책을 읽을 줄 알고 음악을 들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는데 한국에 왔더니 그 모든 것을 잊고 일만 하라 한다. 우리가 좋아했던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일만 하라 한다. 주는 대로 먹고 자라 한다. 그때 우린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이런 모욕감이라면 우리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내가 인간인데 누군가 나를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무엇을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것처럼만 여길 때 우린 상처를 받고 맙니다. 나를 하나의 직업으로만 여기는 거죠. 이를테면 알바생으로, 주차요원으로. 김재형 관장이 보기에 농민들은 오랫동안 모욕을 당해 왔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과 소외를 극복하기 어려웠고 툭하면 행정기관의 편의를 위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김재형 관장이 생각하는 품위 있는 삶이란 경제적 능력뿐만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에게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기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삶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런 삶이야말로 품위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선 우린 계속 읽고 배우고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는 이상하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우리보다 힘센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그럴 필요가 없을 때조차도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 초라함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느끼는 것은 타인이 그렇다고 말해 줘서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자기를 인간이라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먹고살기에 바빠 아등바등 참 거칠게 살았어. 모르면 그렇게 살아도, 알고 나면 그렇게 못 하지.” 김봉순 할머니의 말은 바로 그런 뜻일 겁니다. 이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새롭게 다시 살고 싶다는 뜻일 겁니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갖고 싶다. 시를 쓴 많은 할머니들이 제게 한 말입니다. 인간의 갈망이 이 지상에서 이뤄지는데 즉 유토피아에 관심이 많았던 에른스트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실제로 무엇을 축조하고 창안한다. 우리는 다만 틀림없이 자라게 될 비밀스러운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이다. 자기 자신에게 적합하게 되려는 열망은 영혼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열망은 어떤 새로운 현실을 마치 수정과 같이 완전히 사고하게 하는 해결책이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을 원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정신은 마치 하나의 강렬한 자석처럼 작용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 세상의 미래, 즉 우리의 미래를 끌어당긴다. 다른 한편 미래는 우리를 지켜보며 선과 악을 분명히 결정하지 않은 채 느슨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처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전혀 모른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축이요, 엔진이니까. 외부적으로 주어진 삶은 여러 장애 요인으로 인하여 계속 차단된다. 그러나…… 우리의 내적인 그림자는 전혀 휴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설계할 때까지 끊임없이 활동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허하고 발효하는 밤이 마침내 새로운 빛의 완성을 이룩하게 되고 주위에는 모든 사물, 인간, 그리고 창조물들이 축조될 것이다’
이 말을, 인간에겐 언제고 뭔가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좀 더 쉽게 말할 겁니다. 조남임 할머니처럼, 이렇게 말입니다. “배우면서 다시 어린애가 되었어.”
우리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인간적 존엄성도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모욕당하지 않아야 하고 아름다운 것을 볼 기회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에 관해서라면 다행히 이 마을의 공기 안에는 단내 나는 뭔가가 있습니다. 뭔가가 녹아 있습니다. 아마 요정을 좋아했던 셰익스피어라면 요정이 온갖 과거의 일들과 함께 녹아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마을에는 요정은 없지만 신비로운 깊은 산과 초록 강과 어머니들과 가족 공동체가 있습니다.
정혜윤 http://story.aladin.co.kr/mytime
곡성. 금곡교, 물놀이, 자리마다 부채가 달려있는 마을버스, 노란컨버스를신고있던 봄, 민지와 성희의 웃음소리, 메론과 오징어, 다섯 개의 빵집이 이어진 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