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cio:Part, Glass & Martynov

■● 2014. 1. 15. 23:57

대학생 시절 바이올린이란 악기에 한창 빠진 적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앨범들을 사 모으고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을 꼭꼭 챙겨 보았었는데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와 길 샤함(Gil Shaham)은 그 시절 저를 이 매혹적인 악기에 빠져들게 한 주인공들이었습니다. 특히 기돈 크레머는 새 앨범이 발매되면 저를 바로 음반가게로 달려가게 했을 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들 중 하나예요.

 

기돈 크레머는 1947년 라트비아 공화국 태생으로 1970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지요. 세계적인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그가 유독 저를 매혹시킨 이유는 그의 연주도 연주지만 무엇보다 아주 폭넓은 레퍼토리들 때문이기도 한데요. 비발디와 바흐 같은 고전부터 벨라 바르톡이나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 20세기의 작곡가들까지 그가 향하고 있는 음악적 시선은 정말 광범위합니다.

 

이런 그가 1997년 챔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게 되는데요. 크레메레타 발티카(Kremereta Baltica)라는 이 오케스트라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 등 3개의 발틱 국가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음반과 활동은 기돈 크레머의 폭넓은 음악적 관심사만큼이나 아주 다채롭고 흥미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꽤 오래전에 내한공연을 했던 슬라바 플루닌의 스노우쇼에서도 이들의 연주를 들어 볼 수 있는데요. 2002년 발매된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 앨범에서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생일축하 노래를 이토록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느냐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이들의 2000년 앨범 'Silencio:Part, Glass & Martynov'는 앨범 제목을 보자마자 정말 들어 보지 않을 수 없는 음반이었습니다. 침묵이라는 제목 아래 아르보 패르트(Arvo Part),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블라디미르 마르티노프(Vladimir Martynov) 세 작곡가들의 음악을 기돈 크레머와 크레메레타 발티카가 에리 클라스(Eri Klas)의 지휘 하에 협연을 해요. 아르보 패르트는 이전의 음반가게에서도 한번 소개해 드렸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중 한 사람이고 필립 글래스 역시 영화 '디 아워스'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음악가로, 또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들의 음악을 한 앨범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앨범은 정말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만드는데요.

 

그러나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트랙들은 블라디미르 마르티노프의 음악들입니다. 마르티노프는 구소련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추구했던 젊은 신진 작곡가였어요. 특히 챔버 음악과 콘체르토 작품들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런 그의 음악들을 기돈 크레머와 크레메레타 발티카가 'Come in!, Movement'의 제목 하에 총 6개의 작품으로 이 음반에서 선을 보입니다. 아방가르드나 현대음악, 이런 단어가 무색할 만큼 너무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이 트랙들인데요. 요즘 이 겨울의 아침, 매일 하루를 여는 저의 음악이 되어 주고 있기도 하답니다.

 

김정범/뮤지션/twitter.com/puddit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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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마르티노프의 음악 감미로운 선율 타고 귀에 쏙" /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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