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핵심이, 그러니까 가장 지저분한 것이 뭐냐 하면, 나란 놈은 심술궂은 인간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악에 받친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괜스레 참새들이나 놀래는 주제에 그걸 자기 위안거리로 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심지어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 같은 순간에도 속으로 수치스럽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어떤 것이든 의식이란 다 병이다.
일단 저지른 일은 절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하는 것을 강렬하게 의식하고 그걸 빌미로 남몰래 속으로 나 자신에게 이를 갈고 또 갈고 나 자신을 물어뜯고 쥐어뜯으며 못살게 굴고, 그러다 보면 쓰라림이 마침내는 어떤 치욕적이고 저주스러운 감미로움으로 바뀌고, 마침내는 단연코 진지한 쾌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이 경우 쾌감은 바로, 자신의 굴욕을 너무도 선명하게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 결과 말없이 무기력하게 이를 갈고 음탕하게 관성 속으로 침잠하여 성질을 부리려고 해도 사실 그럴 상대가 통 없다는 몽상에 젖는다. 정말 그럴 상대가 없다. 어쩌면 영영 없을 거다.
그래, 자신의 굴욕감 속에서도 쾌감을 찾으려 혈안이 됐던 인간이 도무지 조금이라도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는가.
뭐, 예컨대 아무 이유도 없이 일부러 골을 내기도 했다. 그것도 실상 아무 이유도 없이 골을 내고 괜히 그런 체했다는 걸
나 자신이 더 알면서도 결국엔 정말로, 진짜로 골을 내는 지경으로까지 몰아갔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냉소가 꿈틀거리지만, 어쨌거나 괴로워하고 그것도 진정으로,
진짜로 괴로워하는 것 말이다. 질투를 하고 앞뒤를 잃고........ 이 모든 것이 권태 탓이다.
즉, 그들은 꽉 막혀 있기 때문에 제일 가깝고 부차적인 원인들을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쉽게 자기 일의 확고한 근거를 찾았다고 확신하곤 그렇게 마음을 놓는다. 실상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 복수를 하는 것은 거기서 정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했고 또 근거를 발견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니라 정의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모든 면에서 안심했고, 따라서 떳떳하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확신에 차서 평온하게, 성공리에 복수를 한다.
질문 : 대체 넌 뭐 하는 놈이냐?
대답 : 게으름뱅이.
과연 자신에 대해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굉장히 유쾌하지 않겠는가. 확실한 정의가 내려졌다는 소리고,
또 나에 대해 말할 게 있다는 소리니까, ‘게으름뱅이!’라니. 정말이지 이건 하나의 직함이자 사명이며 또 이건 하나의 이력이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그렇단 말이다.
나에게 존경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못살게 굴 테다. 조용히 살다가 의기양양하게 죽어 간다는 것,
과연 이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야말로 매력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뱃살을 잔뜩 찌우고 턱을 세 겹으로 만들고
딸기코를 매끈하게 손질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보고서 “거참 난놈일세! 진짜 긍정적인 구석이 있는 놈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실상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부정적인 세기에 이런 평을 듣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 아닌가, 여러분.
문명이 대체 우리 내부의 무엇을 부드럽게 해준단 말인가? 문명은 오직 인간 내부의 감각들의 다면성을 개발해 줄 뿐....... 그뿐,
더 이상 단연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다면성이 발전함으로써 결국 인간은 아마 더욱더 피 속에서 쾌감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은 어떤 낡고 고약한 관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상식과 과학이 인간의 본성을 재교육하여 정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반드시 그걸 익힐 것이라고 전적으로 확신한다. 그때면 인간은 자발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말하자면
자신의 정상적인 이득과 정반대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는 것은 자연스레 원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 자기 자신의 의지적이고 자유로운 욕망,
아무리 거친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변덕, 이따금씩 미쳐 버릴 만큼 짜증스러운 것일지라도 여하튼 자기 자신의 환상.
“우리의 욕망이 오류투성이인 것은 대부분 우리의 이익에 대한 시각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오.”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그 발현에 있어 우리의 삶은 종종 너저분한 꼴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삶이지,
한낱 제곱근 개평방법 따위는 아니다.
인간이 그냥 어리석다 못해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을, 심지어 자기에게 해로운 것을 일부러, 의식적으로 바라는 경우가 한 번,
정말 딱 한 번은 있다. 다름 아니라,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을 바랄 권리를 갖기 위해,
오직 현명한 것 하나만을 바랄 의무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욕망은 몹시 자주,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또 집요하게 이성과 상치되고...... 또...... 도 그렇긴 하지만
이것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따금씩은 매우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
이런 박애주의자들 중 대다수가 이르든 늦든 인생의 끄트머리에 가서는 무슨 사건을 그것도 이따금씩은 가장 점잖지 못한 축에
들어가는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스스로를 배반해 왔다.
인간에게 모든 지상의 행복을 퍼부어 머리까지 그 행복 속에 머리까지 푹 잠기도록, 오직 거품만이 그 행복의 수면 위로 끓어오르도록 하라.
이런 상황에서도 오직 배은망덕한 습성 때문에, 오직 비꼬지 않으면 안 되는 습성 때문에 추잡한 짓을 저지르고 말 것이다.
무슨 근거로 인간의 욕망을 그렇게 교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런 교정이 정말로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모든 죄악의 어머니로 알려진 파괴적인 무위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창조를,
또 길을 개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이건 틀림없다.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파괴와 혼돈을 또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내가 옹호하는 것은........ 나 자신의 변덕이요, 또한 필요할 때마다 내가 마음껏 변덕을 부리는 것이 보장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간이 이따금씩은 진짜 고통, 즉 파괴와 혼돈을 거부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고통이야말로 실상 의식의 유일한 원인이니까.
앞으로 천년 동안 가난한 거주자들에게 내줄 셋집이 잔뜩 딸려 있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 치과 의사 바겐하님의 이름까지 내건
간판이 붙어 잇는 어마어마한 건물이 내 손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건물을 내 소망들의 월계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겠다.
애걸복걸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지하가 있단 말이다.
결국, 여러분,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의식적인 관성이 낫다! 그러니까 지하 만세!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베알이 꼴릴 만큼 부럽다고 말했지만, 그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상태에 있는 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당신이 정말로 고통 받았던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자신의 고통을 조금도 존경하지 않소.
허위, 허위, 허위올시다!
누구든 사람은 오직 친구들이 아니면 아무한테나 털어놓지 못하는 추억이 잇는 법이다. 친구들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그것도 은밀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끝으로,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털어놓기 무서운 것들도 있는데,
점잖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즉, 심지어는 점잖은 사람일수록 그런 것들은 더욱 더 많을 것이다.
즉, 무엇을 위해서, 도무지 왜 나는 쓰고 싶어 하는 것일까?
끝으로, 나는 심심하다, 나란 놈은 도무지 하는 일이 없다. 뭘 기록한다는 것을 정말 일인 것 같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은 착하고 성실해진다고들 말한다. 자, 그렇다면 적어도 좋은 기회가 온 셈이다.
그 당시 나를 괴롭힌 정황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니라, 아무도 나를 닮지 않았고 나도 아무와도 닮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혼자건만 저들은 모두다.’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는 밤마다 고립 속에서 남몰래 두려움에 떨며 더러운 방탕에 빠지곤 했는데, 가장 역겨운 순간에도 수치심은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런 순간이면 심지어 나 자신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에 이미 나는 내 영혼 속에 지하를 담고 다녔다.
음울한 생각이 나의 뇌 속에서 생겨나 어떤 징그러운 감각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갔는데, 꼭 곰팡이 슨 눅눅한 지하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원래 난 허영심이 많은 놈이라서 꼭 살 껍질을 싹 도려낸 것처럼 공기만 닿아도 고통스러울테니까.
지금까지는 존재한 적도 없는 무슨 보편 인간이 되려고 안달복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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